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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r 18. 2021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

느지막이 잠들었지만, 출근하는 매장이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한 덕분에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했다. 내내 내가 준비하는 동안 주변의 것들을 치우며 내 짐도 함께 정리해줬다. 참 다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나를 챙기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짐을 챙겨 나와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아침도 못 먹고 보내서 어떡하지? 괜찮아요?"

"아냐 아냐, 조금이라도 같이 있어서 난 괜찮아요, 그리고 난 어차피 지금 집에 가잖아.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애기는?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해서 어떡해? 오늘 많이 바쁘다며.."

"나는 뭐 어차피 익숙해서 ㅎㅎ 가서 일단 커피 한잔 내려 마시려고. 그거면 돼요. 배고프면 재료 좀 주워 먹지 뭐, 걱정하지 마요 ㅎ"

"아니 아침부터 커피 마시게요? 그래도 배고플 텐데. 뭐 좀 먹지 더 바빠지기 전에. 뭐라도 사다 줄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요. 나 걱정 안 해도 돼 ㅎ 어차피 아침 안 먹어서 ㅎㅎ 엇 벌써 다 왔네!"

"그러네. 너무 가깝다.. 헤어지기 싫은데"

"이따 저녁에 정말 올 거예요?"

"왜? 오지 말까?ㅎㅎ"

"아니 그게 아니라 힘들까 봐 그러죠.."

"나 하나도 안 힘들어요. 애기가 지금 출근하는 거에 비하면 난 하나도 안 힘드니까 괜찮아 기차도 이미 바꿔놨어.ㅎㅎ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예요. 애기 혼자 안 둬요~"

"히이.. 알겠어요. 아고 나 들어가야겠다. 오늘 연락 자주 못 할 거예요! 조심히 가구! 이따 봐!"

"애기 잠깐만!"

"?????"


쪽-

"??????"

"다치지 말고 일해요. 이따 데리러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요."


그렇게 크리스마스 아침 하기 싫은 출근을 더 하기 싫게 만들고 그는 안양 집으로 갔다. 저녁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문을 열렸는데 웬일로 문이 열려 있었다. 항상 내가 먼저 와서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보안을 안 하고 퇴근한 건가. 너무 바빴나. 미안한 마음과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애기!!!!!!! 왔어요!!!!!!!?!?!?? 애기!!!! 음뫄 쪽!!!"

"??????????????? 미쳤나? 도랐어????"

"우웅!!!! 애기!!! 헤어지기 싫어!!!"

"팀장님 ㅋㅋㅋ 언제부터 봤어? 언제 출근했니!!! 아아아 아아아아아!!!!! "

"어 오늘 바빠, 정민 씨. 빨리 옷 갈아입고 와, 응 막 뽀뽀하고 그럴 시간 없어~"

"???? 팀장님!!!!!!!!!!!!!"

"아, 아니 살려줘, 악!! 아니!! 아!!! 잘못했어, 잘못했어!!! 때리지 마!!! 아니!! 맨날 때려!!"

"아니!!! 왜 놀려 그러길래!! 어? 맞아야지!!!!!!!!"

"아니!! 진짜!! 정민 씨!! 악, 아니 근데 아!! 아 근데 우리 진짜 바쁘다고!! 이거 빨리 멜론 틀어줘. 노동요 틀어줘."

"아니!! 싫어!! 안 해!!"

"아!!! 아니 아니 아니 정민 씨 내가 잘못했어! 나 힘들어 어제도 엄청 바빴단 말이야 빨리 노동요 틀어줘!!!!!"

"으휴.... 오키 일단 옷 좀 입고"

"아니 이거 노래 먼저 틀어주고 옷 입으면 안 돼?"

"으이그으으으으으으. 자. 됐지?"

"응 됐어 ~ 사랑해~ 음뫄~"

"아니!!!!!!!! 노래 끈다?? 꺼?"

"아!!! 아니!!! 잘못했어!! 아니 내가 잘못했어!! 이거 틀어줘!! 아니 진짜로 악!!! 끄지 마!!!"

"팀장님 한번 더 놀리면 안 틀어줘."

"알겠어, 잘못했어. 아 빨리 이거 했으니까 옷 입어 정민 씨 오늘 재료 없어, 빨리!"

"으이그!! 알겠어요!"


아니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웬일로 일찍 출근해가지고 모든 걸 다 엿듣고, 엿보고 있었다니. 팀장님은 들어서자마자 잔뜩 놀려대기 바빴다. 어제 그렇게 바빠 놓고 체력이 남아도나 아침부터 맞을 짓만 골라서 했다. 잔뜩 약이 오른 나는 몇 대 때려주고, 멜론을 틀어줬다. 어제 너무 바빠서 재료 준비를 하나도 못하고 퇴근했다고 한다. 너무 얄밉다가도 미안한 순간이었다. 어제 출근했던 오빠는 오늘 쉬는 날이라고 한다. 덕분에 팀장님과 오늘 단 둘이서 일을 해야 했다. 어제는 지원이 나왔지만, 오늘은 지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바짝 긴장한 상태로 재료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실상 일요일은 장사가 잘 안 되는 편이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정민 씨, 남자랑 외박하고 어? 그러고 남자랑 출근하고 어?"

"뭐.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어? 노래 꺼?"

"아니~ 축가 잘하고 왔냐고 ㅎㅎ 헤헤 아이 왜 그래 앵"

"헛소리하면!!!! 노래 끈다!!!!!!!"

"아니 헛소리라니... 어제 진짜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정민 씨 없어가지고 모르겠지만 어제 진짜 헬파티였는데. 너무하네"

"그랬어~ 오구 그랬어~ 미안해 팀장님 진짜 미안해요, 고맙고요 히히 덕분에 축가도 잘했고, 잘 쉬었어요. 진짜 고마워."

"아니 그래서~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거람?~"

"아니 팀장님, 바쁘다며."

"아니 어 얼추 준비 다했어. 양배추만 하면 돼. 양배추. 아니 그러니까 썰좀 풀어보라고. 나 어제 고생했는 데에에 에 그것도 못해주나 아아 아"

"하..... 사귀기로 했습니다. 됐죠?"

"뭐야 뭐야~ 뭐야~ 뭔데~ 몇 살인데~ 키 엄청 크던데~ 뭔데~ 뭐야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아니, 뭐..."

"아니 몇 살이데~ 왜왜왜~ 애기~"

"확 씨!!!!!! 때린다!!!!! 노래 끈다??????"

"아니~ 왜 자꾸 노래 끈데~ 아니 몇 살이냐고~"

"스물.....ㄴ......ㅅ"

"뭐? 뭐라고? 몇 살이라고?"

"아니 스물네 살."

"스물네 살?????? 스물.... 네 살?????? 아니 이거 순 도둑놈이네."

"년. 년. 도둑년."

"아니 년이라고 하기는 좀 그르니까. 와. 능력 있네."

"어어 그 어 그렇게 됐어요. 아쫌 저리 가!!!! 떨어져!!! 나 지금 이거 하잖아. 저리 좀 가!!!!"


재료 준비를 하는 내내 팀장님은 내 어깨에 고개를 얹고, 어제의 썰을 풀라고 하루 종일 징징거렸다. 장난치며 양배추를 썰고 야채 준비를 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그래 어디 해보자.


"어서 오세요. 왓츠 피 데입니다. 주문은 카운터에서 도와드릴게요~"

"저 클래식 코피데랑, 할라피뇨 세트로 주세요."

"음료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환타요, 환타 오렌지."

"네, 만 구천 오백 원입니다."

"여기요."

"네, 영수증이랑 진동벨 드릴게요. 진동벨 울리면 이쪽으로 오시면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는데 저, 물도 주시나요?"

"아, 네 물은 여기 옆 에보시면 준비되어 있어요~ 저쪽에서 드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네, 다음 고객님 주문 도와드릴게요~"


주문을 반복하기를 수십 차례.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중간에 배가 고파도 밥 먹을 시간 따위 없이 하루가 빠르게 흘렀다. 너무 지쳤지만, 일요일이어서 그랬는지 다행히 손님은 생각보다 일찍 끊겼다. 재료가 다 소진되기도 했고. 그렇게 저녁시간이 조금 지나서 단골손님이 오셨다. 근처에서 바를 운영하시는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신사분이셨다. 항상 오실 때마다 같이 일하는 직원 몫 까지 사 가지고 가셨다.


"어유!!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고, 아까 보니까 매장 엄청 바쁘던데! 역시 크리스마스라 그렇죠?"

"아, 네! 사장님도 많이 바쁘시겠네요!"

"우리는 뭐 한가하지~ 저녁 장사라 그런지 어제는 좀 바빴는데 오늘은 한가로워요. 참 이거!"

"앗 , 잉 감사합니다!"

"아니 오다가 뭐 ㅎㅎ 꽃 좋아하신다길래."

"잉 감사합니다 사장님! 팀장님 이것 봐!"

"오~ 정민 씨 좋겠네~ 남 자치.."

"즈응흐흐르, 그읍드믈르그흣스"

"저! 그럼 아까 전화로 주문했던 거 결제할게요!"

"아, 네! 오늘 크리스마스니까 제가 다 세트로 드릴게요."

"아유~ 감사해요!"

"이거 여기 드리고, 영수증 드릴게요.ㅎㅎ 맛있게 드세요!"

"네! 고마워요 ㅎㅎ 메리 크리스마스!"

"앗, 사장님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감사해요!"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단골손님이 어떤 여자분이 목화꽃 들고 가는 걸 보고 예뻐서 샀다며 목화꽃을 한송이 선물로 주셨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셨다는 말에 너무너무 감사했다. 꽃을 받아 너무 신이 나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재영 씨에게 보냈다. 


- 이거 봐요! 난 꽃 받았어!

- 뭐야? 누구야? 팀장님이야?

- 팀장님? 팀장님이 꽃을 왜 줘?

- 뭐야 누구야. 남자가 줬어?

- 남자? 남자긴 남자지?

- 아니 뭔데. 누구냐고. 그래서 누가 줬는데.

- 우리 단골손님이 주고 가셨어 ㅎㅎ 예쁘지! 내가 꽃 좋아한다고 한 거 기억하셨다고 하면서 줬어.

- 뭔데. 몇 살인데. 뭐하는 사람인데.

- 엥? 화났어?

- 아니, 그럼 여자 친구가 남자한테 꽃을 받았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어.

- 엥? 팀장님이 줬어도 화낼 거야?

- 팀장님 너무 친한 거 아냐? 팀장님도 남자잖아.

- 에? 걔는 남자 아니지.

- 아니 그래서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고.

- 으잉? 진짜로 화났어? 에에 삼촌뻘 되는 분이셔. 근처 사장님이고, 단골. 걱정 안 해도 돼.

- 아, 그래? ㅎ 고마운 분이네.ㅎ

- 그렇지! 너무 예쁘지.

- 응, 예쁘네.ㅎ

- 이제 출발할 거야? 진짜로 나 데리러 와요?

- 응 갈 거야. 이제 저녁 먹고 슬슬 출발하려고. 많이 바빴어?

- 좀 바쁘긴 했지만, 괜찮아 지금은 안 바빠. 우리 그냥 어차피 영등포 갈 건데 영등포에서 볼까? 그럼 재영 씨 좀 더 늦게 출발해도 되잖아. 나 오래 안 기다려도 되고.

- 내가 가는 게 싫어?

-? 무슨 소리야 그게?

- 내가 애기 데리러 가는 게 싫냐고

- 엥? 그런 게 어딨어! 데리러 오면 좋죠 나야 너무 고맙지 , 힘들까 봐 그러지

- 꼭 오지 말라는 느낌이 들어서. 

- 엥? 아니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나 데리러 와주면 좋겠지 당연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좀 힘들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절대 아니에요 그런 거.

- 그럼 데리러 갈 거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 응응 알겠어요 ㅎ 조심히 와아. 어 나 이제 마감 준비해야겠다. 이따 봐요.

- 응 다치지 말고. 조심히 해~


어유. 잔뜩 신나서 자랑했는데. 하마터면 크게 싸울 뻔했다. 근데 그게 왠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달까. 이렇게 설렌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 사람이 보여준 이런 사소한 모습들이 괜히 설렜다. 왠지 어릴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5년을 만난 그 사람은 질투라는 게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서 그랬는지 항상 확신에 차있었다. 본인이 아니면 안 될 거라고 늘 세뇌하듯 말했다. '어차피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헤어지고 나서 1년 동안을 그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다. 나를 만나면서 도대체 얼마나 자신에 차있었으면, 헤어지고 나서 본인 결혼 한 달 전까지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을 내가 이해하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예쁜 아가를 낳아 잘 지내고 있는 그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활에서 나를 빼면 일밖에 없었던 사람이라. 단순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강했기에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내게 표현을 하지 않았고, 어떤 질투도 하지 않았다. 단골손님들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도, '인기 많네.' 이게 다였다. 그런데 재영 씨는 모든 것 하나하나 사소하게 지나치는 말까지 담아두고 알아채 줬다. 표현에도 숨김이 없었다.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생 많았어요..... 다리가 후덜거린다 야...."

"정민 씨. 고생 많았어. 내일 또 쉬네... 와"

"티임자앙닝이임........ 미얀."

"아니야, 축가하고 거 뭐 남자 만난다고 힘들었을 테니까. 집에 가서 푹 셔."

"으응... 으어어 힘들다."

"안녕하세요."

"어? 어 안녕하세요! 저희 영업 끝났는데.."

"아, 저 그게 아니고. 정민이 데리러 왔는데요."

"아!! 아침에 그!!! 정민 씨!!! 나와!!! 나와보라고!!! 빨리나 와!!"

"아, 왜!!! 나 옷 좀 입고오! 좀 기다려! 좀!! 어차피 팀장님 거기서 입을 거잖아!!!"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빨리 나와봐!!"

"아, 저 괜찮아요. 천천히 기다리죠, 뭐.ㅎㅎ"

"아, 이쪽에 앉으세요, 정민 씨가 옷 입는 게 좀 오래 걸려서."

"아아, 네네. 감사합니다."

"아 겁나 재촉해쌓..... 어? 왔어요? 히이-"

"온도차 보소...."

"므. 즈응흐흐르."

"나 안에서 옷 갈아입을 테니까. 정민 씨 먼저 들어가!"

"어? 아냐 다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 나 아직 짐 덜 챙겼어."

"짐? 이거 먼저 가지고 나가. 먼저 퇴근해! 나 기다리지 말고."

"엥? 알겠어요, 그럼 나 먼저 가요~ 고생했어요 팀장님. 팀장님 화수 쉬나? 그럼 목요일에 봐요!"

"엉! 잘 가고~ 고생 많았어 푹 쉬고! 화수는 동현 형님 오실 거예요! "

"아, 진짜? 알겠어~ 팀장님 조심히 가요~"

"어어, 가 빨리 가. 제발 가. 이제 그만 가. 나 옷 입을 거야."

"앙영!!!!! 가자 재영 씨. 히이. 너무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아냐, 오래 안 기다렸어. 어어 조심조심. 넘어진다. 안녕히 계세요! 담에 봬요!"

"네네 들어가세요~"

"저분이 팀장님이야? 되게 어려 보이네."

"어어. 나랑 동갑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ㅎㅎ 동갑이야 동갑."

"애기 힘들지 이리 줘. 짐. 내가 들어줄게."

"아냐 아냐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리 줘요. 어유 무겁네."

"아고.. 고마워.. 오늘 진짜 바빴어... 핸드폰 볼 시간도 없었다."

"뭐.. 꽃 받을 시간은 있었던데?"

"아! 아니~ㅎ 그거 그냥 단골손님이 주신 거자너~"

"ㅎㅎㅎ 알겠어 어어어 어 넘어진다. 넘어져."

"아고 그때 신은 구두밖에 없어서."

"바꿔 신어 줘?"

"에이~ 뭐래. 괜찮아 괜찮아."

"오늘 고생했어. 힘들면 다 잡고 가자 오구오구"

"아 그냥, 택시 탈까 아.. 별로 안 먼데.."

"택시? 괜찮겠어? 애기 요 며칠 돈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근데 너무 힘들다아아...."

"택시 내가 잡을게 그럼, 택시 타고 가자. 구두 신고 누나 힘들겠다."

"아냐, 내가 카카오 부르면 돼요 오오....."




종일 서서 주방일 하랴, 홀일 하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던 날이었고, 축가 부르던 날 이후로 집엘 들어가지 못한 상태여서 신발 역시 구두였다. 여분의 옷은 가지고 왔었고, 매장에도 여분의 옷을 가져다 놨기 때문에 다른 건 문제가 없었는데 유독 구두가 문제였다. 다친 발목이 욱신 저리기 시작했고, 조금 걷는 것도 힘이 들었다. 결국 카카오 택시를 불러 숙소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영등포역 앞에 위치한 호텔로 우리는 금세 도착했다. 다음날 재영 씨도 아침 일찍이 기차를 타고 내려가야 했고, 나도 내려가는 것만 보구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역에서 가까운 데로 예약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올라가 신발을 벗고 몸을 뉘었다. 온몸이 아스라지는 것 같았지만, 옆에서 안쓰럽게 보는 재영 씨의 시선에 눈을 그대로 감지 못하고 히죽거렸다.


"애깅 많이 힘들어요?"

"으어어 어... 사실 축가 부르러 가던 날 이틀 전부터 잠을 설쳐가지고.. 좀 피곤해요.. 눈 떨려 막"

"애깅.... 그래도 씻고 자요. 감기 걸려.."

"나 쪼꼼만 이러고 있을게 우엉 힘드렁"

"일로 왕 내가 안아줄게. 애깅"

"어허어................. 따뜻 해애애...."

"어어.. 자면 안 돼. 감기 걸려."

"근데 배고프다. 나 사실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는데...."

"그럼.. 애기 힘드니까 내가 나가서 뭐 좀 사 오까? 뭐 먹고 싶어?"

"흐으.....ㅁ... 나 혼자 두고 나가게?"

"어? 아니 애기 힘드니깐"

"그냥 배달시키까? 나 혼자는 무서운디이이..."

"그럼 그냥 배달시키고 마실 것만 가서 잠깐 내가 사 올까?"

"아냐 배달시키고, 나도 같이 가. 나 맥주 마실랭"

"애깅 저거 신고 나가야 되는데 괜찮겠어?"

"여기 바로 앞에 씨유 있던데.. 괜찮겠지 바로 앞이니깐 히이.. 같이 갈랭"

"알겠어, 그럼 뭐 먹지?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애깅?"

"그냥 우리 치킨이나 시켜서 맥주랑 먹장"

"치킨 좋지, 애깅 치킨만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다른 건 필요 없어?"

"응 치킨이면 될 거 같은데, 맥주 마실 거니깐"


우리는 치킨을 주문하고, 조금 있다가 호텔 근처에 있는 씨유에서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치킨이 오기 전에 얼른 씻고 나와 맥주를 한 캔 따서 시원하게 마셨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맥주 한 캔에 홀랑 넘어가는 것 같았다. 곧이어 치킨이 왔고, 우리는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따뜻한 서로의 품을 탐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재영이는 대구로 내려가야 했고,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고 따뜻한 품에 한참을 서로 끌어안고 있다 잔뜩 남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짧은 인사를 건네야 했다. 재영이가 탄 기차의 꼬리가 다 사라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선물해준 디퓨저로 허전함을 달랬다. 어쩌면 길고 어쩌면 짧았을 우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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