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

진짜 쉼이란,

by maudie

사소하고 별거 없는 모든 순간에게 사랑을 말한다.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던 나에게 사소하고 별거 없는 모든 순간도 사랑임을 알게 하기까지의 시간이 꾀나 걸린 것 같다. 사실 나는 무언갈 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불안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완전히 괜찮지는 않은 듯하다. 꼭 반드시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어디서부터 그런 강박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하고 별것 없는 일상의 순간들이 사실 소중하다고 느끼기에는 아직 너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들도 많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중인 것 같다. 진짜 쉼을 나에게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소한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쉬는 날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군에서 일을 했다. 게다가 그 쉬는 날도 남들처럼 이 아닌 남들보다 훨씬 적은 날을 쉬었던 것 같다. 가령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한 달에 8번을 쉰다고 하면 나는 4번을 쉴까 말까 한 상황에서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쉬는 날은 근무하는 날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하는 날일 뿐 정말로 쉬는 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쉬는 날에 쉬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멈춰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쉬는 날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남자 친구를 만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쉬는 날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대충 언제쯤이라고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이때도 남자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항상 사람에 치여 지냈다. 유독 진상을 많이 만나는 날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에도 흠칫할 정도로 예민해졌고, 쇼핑몰의 밝은 엘이디 등 아래서 하루 종일 지내다 보니 심지어는 작은 불빛조차 싫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안쓰러워졌고,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지만, 남자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에는 동굴처럼 컴컴한 방 안에 갇혀 하루 종일 울기 바빴던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생 때 전공과 관련해 카페를 많이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 카페를 좋아했다. 그래서 하나씩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책도, 책을 읽을 시간도. 일을 하러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가기도 했다. 평소에도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영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혼자 할 수 있게 되면서, 나의 시간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꼭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해 가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 지를 알게 되었다. 사소한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보면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꼭 무언갈 해야 하고, 어디를 가야 하고 멀리 여행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강박이 있었고, 나는 자주 쉬지도 못하는데 하고 꼭 누군가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내가. 정말 사소한 것 하나로 완전히 바뀌었던 것 같다. 그 전환점의 시작이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혼자 무언가를 하기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다. 물론, 혼자 밥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업무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외에 어떤 것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영화를 보러 갔던 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늘 영화를 보는 내내 옆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느라,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었다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혼자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와 나 세상에 딱 둘만 남겨진 기분이었고,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누가 보면 뭐 그게 대단한 거라고.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소하지만 하나씩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없어도,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시간에 묻어 나를 여유에 두는 것.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것.


온전한 쉼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사소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이만큼의 변화도 나에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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