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타는 지도 모르고 장작을 다 태우지 말 것.
왜 불타는지도 모르고 장작을 다 태우지 마세요. 왜 불을 피우는지도 모르면서 가진 장작을, 왜 다 가져다주나요. 충분히 타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바라지도 않은 장작을 스스로 다 바치고 있는지. 그러지 마세요.
내가 요즘 밤마다 듣는 라디오에서 훈글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시는 분이 한 이야기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너무 공감이 되어 옆에 두었던 노트에 연필로 끄적여 두었던 문장들이다. 생각이 많은 밤을 가득 채운 그 문장들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공감돼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문장이,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왜 불타는지도 모르고 장작을 태우지 말라니. 돌아보면 사실은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정말 나에게 하는 이야긴 줄 알았다. 그 사람이 왜 지금 불을 피우고 있는지, 왜 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가진 장작을 다 가져다주었다. 결국은 죄다 가져다주고 남은 것이라곤 타고 남은 재뿐이었다. 이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이 피우는 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내어주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시간에 내 모든 것을 다 불태워 버리는 것. 당연히 지나고 나면 남는 것 하나 없겠지. 새카맣게 타버린 미련뿐이다. 사실, 나는 처음엔 저 타고 있는 뜨거운 것이, 아무 이유 없이 내 곁에서 활활 타는 것이, 해인 줄만 알았다. 장작이나 불태우는 그런 것 말고, 세상을 밝혀주는 그 해. 까만 밤 같은 우주에서 활활 타고 있는 그 해.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 그런 줄만 알았다. 꽃도 해가 있어야 피어날 수 있듯이 그런 귀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주었다. 하지만 해인 줄 알았던 그것은, 그저 호기심에 불이 붙은 작은 불씨에 불과했고, 그 불씨는 결국 한낱 재만 남기고 떠났다. 마치 뜻 없는 불장난처럼. 그래서 저 이야기가 더 내게 남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씨는 결국 스스로 지치면 꺼지고, 태운 것들의 재만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 흔적들에 괴로운 것은 오로지 그것들을 타게 둔 남은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왜 불타는지도 모르고, 저 타고 있는 게 불씨인지 해인지 구분도 하지 못 한채 나를 태우는 것은 아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알고도 나를 태워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주저 없이 다 태워도 그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허무하게 다 타버려 까맣게 미련만 남는 것보단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오래 알아보고서, 겪어보고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고민하는 사이 불씨가 꺼져버린다면 어차피 인연이 아닐 테니까.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그러다가 나를 다 태워버렸으니까. 정말 까맣게 탄 미련만 남기고 다 사라져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