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다. 물이 증발하듯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얼룩지지 않게 마치 세상에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나를 남기지 않는 것, 나를 기억하게 두지 않는 것. 비가 내리고, 꽃을 피우고. 그렇게 비는 자신이 피워낸 꽃을 두고, 어떤 미련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서 사라진다. 그 비가 되고 싶다. 마치, 그 비가 된 듯, 아니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는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비였다는 듯, 흔적도 없이 공기 속에 묻어 사라지고 싶다.
비는 하늘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꽃은 핀다.
그러니 나도 잠깐 이 생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의 마음에 꽃 피우는 사람임과 동시에 그 외에는 어떤 흔적도, 얼룩도 남기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레 사라지고 싶다. 비가 그랬듯, 나도 그렇게. 꽃이 비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라 부정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누군가의 꽃을 피우는 존재로는 흔적이 되고 싶다. 어차피 증발해 버릴 테지만.
모든 존재는 모순이다. 모순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모순을 안고, 피운 꽃을 두고 증발하련다.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고, 어떤 미련도, 미련함도 남기지 않고. 그냥 그대로 비가 그랬듯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마치 아무 일도, 누구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 없이 증발하고 싶다.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한다면, 그래 그 꿈을 이룰 수 없더라도 꾸겠다. 비가 되게 해 달라고. 누군가의 마음에 꽃 피우고 증발할, 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