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카페 선일

커피, 도시를 사랑하게 한

by maudie

카페를 떠나, 동네, 도시를 사랑하게 한 커피.


나는 문경이 싫었다. 모든 편의 시설과 문화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싫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불편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문경은 그냥 시골, 깡촌이었다. 영화관도 하나 없는 곳이라니. 편의점을 가려면 걸어서 40분은 족히 가야 한다니. 그 흔한 이마트도 없다니. 전철은 물론이고 기차도 없고, 버스도 찾기 힘든 곳. 차 없이는 두 발이 묶인다는 생각에 문경으로의 이사를 경멸했다. 하지만, 결국 문경으로의 이사는 결정이 났고, 완전히 이사를 다 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올라가신 뒤에도 한동안 요양을 핑계로 홀로 남아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 겪는 낯선 문경, 밤이면 가로등 불도 약해 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논밭 한가운 데에 있는 집. 읍내까지도 걸어서 30분은 족히 나가아하는 곳. 밤에는 그것마저 할 수 없다. 아파트에서만 내내 지내왔던 나에게 주택이란 그저 cctv 없는, 경비아저씨도 없는. 어둡고 무서운 공간일 뿐이었다. 낯선 도시에, 낯선 공간.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을 다녀온 뒤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처음 문경 집에 내려온 날, 할머니를 따라 집을 구경하러 온 사촌들과 함께 읍내까지 호기롭게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익숙한 사람들과 걸어서 조금은 덜 불편하고, 덜 무서웠다. 그렇다고 안무서운 것은 아니어서 셋이서 잔뜩 긴장한 채로 걸었던 것 같다. 주변에 논과 밭뿐이어서 더욱. 한참을 걸어 읍내 구경을 하며, 마트를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카페. 을지로에서나 본 듯한 느낌의 카페가 하나 의외의 공간에서 툭 튀어나왔다. 워낙에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고, 더위에 잔뜩 지치기도 해서 우리는 곧바로 카페로 들어가 각자 메뉴를 골랐다. 메뉴가 많지는 않았는데, 왠지 경계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가 좀 심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메뉴 가장 위 편에 자리한 브루잉 커피를 선택했다. 주문을 하고 음료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조금 오래 걸렸다. 그만큼 카페 안은 분주했고, 사람이 많았다. 음료가 나오는 동안 찬찬히 살펴봤다. 너무 예뻐서 정말 천천히, 오래 봤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사진에 담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음료가 나왔다. 사람이 많은 탓에 앉아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못했다. 우리는 음료를 받아 들고, 곧바로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나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낯선 도시, 낯선 동네에서 만난 커피. 기대하지 않았던 탓인지 첫 입에 눈이 확 커져버렸다. 그리고 숨을 쉴 새 없이 한입을 더 입안에 머금었다. 기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커피가 맛있었다. 산미가 풍부했고, 뒷맛이 매우 깔끔했다. 가끔 브루잉 커피를 주문해 마실 때, 종이 맛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정말 커피가 깔끔했다. 원래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커피 맛 그거 하나에 기분과, 생각에 반전이 생겼다. 너무 맛있는 커피를 만나, 낯설고 싫기만 했던 문경이 좋아졌다. 지내는 동안 매일 가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 뒤 친구와 다시 카페를 찾았다.


브루잉 커피 sold out. 이런, 너무 슬펐다. 저렇게 붙어있으면 솔직히 직원한테 물어보기가 은근 민망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먹고 싶었다. 정말 꼭 먹고 싶었다. 민망함을 뒤로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브루잉 커피 솔드 아웃이에요?' 직원은 잠시 통화를 하더니, 솔드아웃이 맞다고 했다. 너무 슬펐다. 언제 들어오냐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메뉴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 보고 나온 길이었다. 하지만 그냥 나올 순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아메리카노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문했다. 같이 간 친구는 크림을 뺀 무슨 커피라고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그렇게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나는 또또, 바보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브루잉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콩을 직접 선별해 가지고 온 뒤 카페에서 볶지 않을 까란 생각을 했다. 잠깐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아메리카노 반잔을 마셔버렸다. 이렇게 되면 5분도 안돼서 커피가 바닥나겠지? 나는 다시 차에서 내려 카페로 돌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더 주문했다.

작가의 이전글됴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