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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Dec 16. 2021

밤 10시

밤 10시 정각. 핸드폰은 늘 나에게 약을 먹으라고 한다. 잠을 자다가도, 자려하다가도, 씻다가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도. 어느 것을 하고 있어도. 핸드폰은 내게 시간 맞춰 약을 먹으라고 한다. 지겹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드는 것 같다. 제대로 검사와 치료를 시작한 지는 대략 8-9개월 정도. 익숙해질 만하다가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다. 스스로를 아무리 다독여봐도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암인 줄만 알았고, 조직검사를 포함한 각종 검사를 받고,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야 하는 건가에 대해 선생님과 심각히 고민했던 몇 달의 시간.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암이 될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용종이 더 늘어나게 되면 피할 수 없었던. 상상하기도 싫은 나를 힘들게 했던 갖가지 이유들이, 빈틈없이 자궁 안을 꽉 채워버린 그 무서운 용종들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이 불안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 계획대로라면 한두 달 안에 치료가 끝이나야만 한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한 번씩 극에 달 하고, 약물치료를 하는 동안 호르몬 수치의 변화에 기분도 컨디션도 널을 뛴다. 약물치료를 제대로 시작하기를 5번째에 들어설 때 극심한 공포와 우울, 이전과는 다른 통증과 오한. 나는 치료를 그만두고 싶었다.


통증이 지나치게 오기 시작하면 나는 얼른 전기매트를 뜨겁게 하고서 눕는다. 통증이 시작됨과 동시에 찾아오는 오한은 사람을 미치게 했고, 그것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리에 눕기 전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는 약을 침대 옆에 물과 함께 두고 뜨거운 매트 위에 눕는다. 어김없이 오한은 찾아오고, 온몸은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골반과 아랫배는 뜯겨 나가는 것 같았다. 통증에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잔뜩 움츠러든 채로 평소 소리 내 울지도 않는 내가 고통을 숨기지 못하고 뱉어낸다. 감은 눈 안에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11층인 내 방 베란다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장면. 감은 눈꺼풀 안에서 계속 상영된다. 이러다 정말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극강의 공포를 선물한다. 나는 정말로 치료를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암은 아니다. 도대체 암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이 극강의 공포가 통증을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그 사람들에 비하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상태일지도 모르는 지금의 나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데. 그 사람들은 무엇으로 견디는 걸까.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겠지만, 모든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 이야기에 '고작 그걸로'라고 힘껏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약이 잘 들어 약을 먹는 동안은 조금 고통스러울지라도 용종은 약에 의해 조금씩 탈락되고 있고,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이 치료를 빨리 끝내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얼른 건강해져서 후련히 맥주 한 캔만 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쓰고 싶은 이야기가 다시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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