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흔적 위에 덧칠을 한다.

by maudie

마음에 덧칠을 한다. 빛을 잃고 색을 잃은 시간들에 슬며시 덧칠을 한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에는 아직 자신이 없어 옅어진 그림에 자꾸만 덧칠을 한다. 다 날아가 버리고 남은 색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다시 또 칠하고 칠한다. 덧칠한 그림은 점점 번지고 이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 못한데도 그저 남아있다는 게 중요했나 보다. 아직 곁에 있는 것만 같은 그 작은 흔적들이 중요했나 보다. 얼마나 선명한지에 대해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그저 흔적 하나 붙들고 또 덧칠을 한다.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번진 색에 눈물을 끼얹은 채로 마르기만을 바란다. 언제고 다시 덧칠할 수 있게 곁에 많은 색들을 남겨두고.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차마 잊을 수 없었던 색이 다 바래져 버린 너의 흔적에 덧칠을 한다. 무의미한 것임을 모르지 않음에도 반복해 덧칠을 한다. 조금만 더 곁에 희미하게라도 남았으면 하는 마음인가 보다. 참 우습게도 그렇게나 귀했나 보다. 살아오면서 흔적에 덧칠을 할 만큼 귀하게 여겼던 추억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돌아 제자리다. 네가 아닌 추억과 흔적은 색이 바래져 희미해지다 못해 잊혀 가더라도 덧칠을 하고자 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 박박 지우려 애썼다. 번진 흔적마저 사라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너는 차마 지우지 못하고 번지더라도 내내 채우고 싶었나 보다. 덧칠을 해 예전 같진 않더라도 남겨두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너의 흔적 위에 덧칠을 한다. 꼼꼼하고 선명하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색을 잃지 않고 곁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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