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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y 05. 2022

너의 골목에는 아직 내가 남아 있을까.

손잡고 걸었던 모든 곳에 네가 남아 있어. 어쩌면 나는 네가 없는 곳으로 도망쳐온 건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면과 시간과 장소에 네가 녹아있어. 어떻게 해야 너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어.


운전을 할 수 없어 손잡고 걸은 그날들이 때론 전철을 타고, 때론 기차를 타고, 버스를 못 타는 나 때문에 빙 돌아 늘 전철을 타야만 했던. 우리 처음 만났던 날부터 함께한 날들, 내내 함께했던 모든 걸음걸이에 네가 있어. 돌아보면 다 네가 있더라. 어쩌면 그래서 네가 오래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그런 추억을 만들 사람이 이젠 다시없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은 거리를 손잡고 걷고, 놓칠까 붙어가고, 추울까 안고 가고, 늘 온기를 내게 주었던 너였는데. 차갑게 돌아선 뒤에도 너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해. 너무 많은 곳들을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서였을까. 곳곳에 남은 네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네가 떨쳐지지가 않아. 그렇게 돌아설 거였으면 약속을 말았어야지. 네가 남긴 약속에 여전히 난 그곳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서있어. 네겐 상황을 모면코자 했던 일이었겠지만, 내겐 너를 잃지 않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여전히 곳곳에 네가 있어. 시선을 옮기면 너와 함께한 장면이 눈앞에 영화처럼 재생돼. 마치 너와 함께했던 그때로 돌아가듯 말이야. 어떤 추억이든 만들어 너와 함께한 시간에 덮어쓰지 못하면 나는 너를 지울 수 없겠지.


이제는 나 제법 운전도 잘해. 한 번씩은 차를 빌려, 가까운 곳이던, 조금 먼 곳이던, 드라이브도 다녀오곤 해. 이 나이가 되고 보니까 주변에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드물더라.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나는 운전대를 잡은 누군가의 옆에 있더라.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도 너를 덮어 씌우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곳곳에 남은 너를 지우려면 그곳들을 다른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데,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덧씌우러 갈 일이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아마도 너는 영영 그 골목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겠지. 먼 미래의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을 거야, 같은 자리에 넌. 너도 같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너도 어엿한 직장인일 테고, 이제 운전도 하겠지. 손잡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닐 일 따윈 어쩌면 너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어.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너의 골목에도 내가 남아있었으면 좋겠어. 다 지우지 못하고.


그냥 그렇다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들을 지나쳐 걷다 보니 네 생각이 났어.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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