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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Oct 18. 2022

사랑을 빼놓고선 적을 문장이 없다는 말

달콤한 눈물이 더 쓴 맛을 낸다.

사랑을 빼놓고선 적을 문장이 없다는 말

그 말에는 덧붙일 문장이 없다

그것만으로 이미 모든 마음을 이야기했으니까


사랑을 빼놓고선 적을 문장이 없다. - 김유라


오랜만에 커피 한잔에 책 한 권을 삼키고 싶어 아침 일찍부터 책장 앞을 서성이다 몇 권의 책을 겨우 골라 집을 나섰다. 불안함이 밀려온 때문인지 새벽 네 시경 잠에서 깨어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한 시간 정도 겨우 자고서 다시 또 고민에 잠겼었다. 책장 앞에서 그리 오래 고민한 것은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일이 바빠서 라는 모질고도 뜻 없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미련을 질질 끌고 다녔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만 문장들을 씹을 수 있었다.


카페에 앉아 한잔의 커피를 다 마시는 동안 나는 책을 펼치지 못하고 애꿎은 메모장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 말을 뱉고 마주 앉은 동갑내기 사촌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 말을 한 세 번쯤 망설여 뱉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책을 들었다. 가지고 온 책은 세 권이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손에 쥔 책 '사랑을 빼놓고선 적을 문장이 없다.'라는 김유라 작가님의 책이다.


책 제목이 다했다. 정말 사랑을 빼놓고선 적을 문장이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한눈에 나를 이끈 그 책은 수원의 작은 동네 서점 '오평'에서 데려온 책이다.  책장에 아껴만 두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단숨에 읽혔다. 사랑에 관한 문장들은 대게 온기가 가득했다. 기쁘기도 했다가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다가 아쉽고도 허무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따뜻했다. 이상하게도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문장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그건 어떤 이가 써 내려가도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만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작가님의 문장에 나는 휴지를 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이성과의 사랑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은 책은 그런 생각을 한 나를 아주 지독하게 비웃었고, 나는 한참을 짙은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같은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렀다.


사랑을 빼놓고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태어나 나고 자라면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크기 다양한 이유의 사랑을 받고 시간을 보낸다. 그것에 대해 당연하게 잊고 살아온 것이 아쉬울 정도로 참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받아온 만큼 많은 사랑을 또 주면서 시간을 보내겠지. 깨닫기까지의 시간을 멍청하게 보낸 만큼 아파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오래 만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엄마를 조금 더 자주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 날이 금방 오면 어떡하지. 원망만 했던 아빠가 밉기만 했던 아빠를 사랑한 것을 미처 완전히 깨닫기 전에 시간이 나로부터 멀리 도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한심하고 어리다는 것 너무도 잘 알게 된 삼십 대가 되어서야 눈을 끔뻑 마음을 바짝 쫓는다. 후회할 시간이 오기 전에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고 또다시 다짐해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보내온 시간들에 생각보다 짜지 않고 그저 달콤한 눈물이 나를 속여왔으니.


부끄러움에 전하지 못할 사랑을 문장에 남긴다. 언젠간 전해질 날이 올까 하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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