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생각나는 단어, 생각나는 문장,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끄적이기를 좋아했다. 그런 것은 재료가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줄곧 문장을 만들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어디든 닿는 곳이면 썼던 나는 이제 함부로 펜을 쥐지 못한다. 쓰고 싶은 욕망이 나를 덮어도 손글씨보다는 작은 화면 속 손으로 톡톡 건드리기만 하면 되는 텍스트가 더 편해졌다. 펜을 쥐는 일은 내게 엄청난 용기와 특별한 이유가 필요했다. 핑계, 그래 그 핑계가 필요했다. 어쩌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굳이 손으로 무언갈 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다면 아무래도 노트에 끄적이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공간이 더 나으니까, 그러려면 텍스트가 훨씬 수월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만 쓰기로만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꼭 내 손으로 직접 써야만 전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쓰기로 한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만 전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것.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불편하게 담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귀하고 더없는 것. 마음을 담아 전하기엔 아무래도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선물을 담을 종이백과 작은 편지지 몇 장이 들어있는 것을 사서 가까운 카페로 왔다. 한참을 딴청을 부리다 겨우 꺼낸 편지지 위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몇 줄 적었는데 더는 펜을 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손, 애타는 마음 아무리 눌러도 움직여지긴커녕 지렁이 친구들만 늘어가는 편지지. 구기고 싶지만 그만큼마저도 다시 쓸 용기가 없는 지금. 하찮은 손목에 하찮은 글씨체에 눈물이 왈칵. 짜증이 인다.
사소한 일 하나를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정말 우습고 황당하고 처량하고 같잖고 화가 난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긴 시간 떨리는 손을 붙들고 쓴 세줄의 이야기가 살을 덧붙여 전해질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조금은 서글픈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