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다. 아니 겨울의 끝이던가.
우리가 우리가 되기 위한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던 탐색의 시간을 거쳐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이제 막 벚꽃이 팝콘처럼 틔어 세상을 몽글몽글하게 만들 때쯤이었다. 너로 하여금 내 마음에도 꽃이 피려나 기대하던 때가 이미 두 계절이나 멀어졌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궁금했고, 흔치 않은 공감대에 기대가 전자레인지용 봉지 팝콘처럼 타닥타닥 부풀어 올랐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때의 온 세상의 설렘을 내가 다 빼앗아 온 것 마냥 홀로 모자람 없이 설렜다.
그때의 너를 붙들고 나는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 지금. 차갑지만 따뜻하기만 한 계절을 지나고 있다. 선택의 순간이 분명 우리에겐 넘치게 많았다. 권태롭다면 상당히 권태로웠던 순간들이 꽤나 잦았다. 그럼에도 서로의 선택이 닮아 우리는 여태껏 우리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당길 수 있었다. 채워진 시간만큼 차곡히 쌓인 추억들이 우리가 위태로울 때마다 흔들림을 알고 쫓아와 받쳐주고 있다. 쌓은 추억 덕을 톡톡히 보며, 우리 꽤 단단해지고 있다. 여전히 무르고 약한 겁이 많은 두 마음이 만나 종종 얇디얇은 유리알 같다가도 금세 튼튼해지곤 한다. 너 역시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이리라고 의심치 않는다. 모자란 마음에 빈 행복이 채워진다. 곱절로 웃음이 깔리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꽉 찬 사랑이다.
늘 위태로운 우리를 만날 때마다 어쩌면 지겹도록 하는 얘기가 있다. 30여 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각자의 방법과 생각으로 살아왔으니 이 정도 삐걱거림은 당연하다고. 때마다 삐걱거려도 균형을 맞춰 조금씩 양보해 미운 마음을 갈아내면 충분히 틈 없이 단단하리라고. 그러니 권태로울지라도 분명 사랑이니, 더 단단해질 우리를 망각해 깨어지는 실수 따윈 말자고. 내내 겁이 나 떨리는 마음으로 같잖은 으름장을 놓았다. 없는 배짱을 끌어다 한번 더 으름장을 놨다. 나를 놓치지 말라고.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게도 너는 매 순간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권태에 서로를 잃는 실수를 하기엔 우리 꽤나 단단히 추억을 쌓아뒀으니, 너도 별 수 있겠나 싶다.
당연한 것은 없지만, 당연해야만 한다고 바란다. 이것마저도 욕심껏 사랑이라 바득바득 우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