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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23. 2020

너와 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또 겨울이다. 날이 추워졌다고 생각하면 이내 하얀 세상이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은 왔고, 또 그렇게 그 사람은 내 곁을 맴돈다. 이따금씩 '가끔 생각이 난다.'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겨울은 다르다. 그냥 온 세상에 그 사람이 둥둥 떠있다. 숨을 쉬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가만히 찬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온통 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작은 별이 지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졌다.



- 2018. 12. 09.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엄 그냥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대화 요청했어요'

'바쁘신가 봐요'

- 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뭐라 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아 저도 대화를 건 게 처음이라'

'이 이 어플 깔고 대화를 제가 먼저 걸어본 게 처음이에요'

-둘 다 처음이네요 ㅋㅋ 지금 경기 쪽에 올라가 계신 건가요?

'아 네'

'원래는 구미 살았어요'

- 저는 반대로 경기 쪽 살다가 학교 다녀야 해서 내려왔거든요. 지금은 대구에 있어요.

'아 정말요? ㅎㅎㅎ 아아 프로필에 경대!'

- 네 지금 경대 다니고 있어요 ㅎㅎ

'원래는 어디 사셨어요?'

- 저는 원래 안양 살았어요

'아아 어쩌다 멀리까지 가셨네요'

- 수능 보고 등급 맞추다 보니 내려가게 됐네요. 그래도 졸업하면 다시 올라가야죠. 지금은 어디 계시는 거예요?

'아 저는 오산에 부모님 계시고 전 고양 살아요. 죄송해요 근무 중이라서 답이 쪼꼼 늦을 수도 있어요.'

- 아 괜찮아요 근무 중이면 이해해 드려야죠.

' ㅎㅎ 감사해요. 키가 엄청 크시더라고요!'

- 네한 186 정도 돼요. 이 퉁퉁이님도 키 크시던데요.ㅎㅎ

'아 저는 그냥..ㅎㅎ 그냥 그렇죠 ㅎ. 아 저는 이정민입니다. 28살이에요.'

- 아 저는 신재영입니다. 24살이에요. 어플이 불편한데 혹시 괜찮으시면 카톡 하실래요??

'아 넵. 0103*******  이게 제 아이디예요. 전화번호는 지금 제가 쓰는 거 아니에요.'

- 아 네 알겠어요 : )



설레는 하루가 시작됐다. 5년의 연애를 최악의 연애로 정리하고 1년 정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너무너무 외로워. 친구들도 다 연애하고 하나둘 결혼을 한다고 하니 더 외로워졌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소개팅 어플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키가 186이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키가 큰 남자를 너무 좋아했다. 그냥 얼굴이 별로여도 키가 크면 잘생겨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 물론 5년 만난 놈이 작아서는 아니고. 어쨌든 뭔가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예의도 발 라 보이고. 아 근데, 스물네 살이라니! 으악! 연하는 딱 질색인데. 아쉽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수제버거 가게에서 일을 하는 나는 오늘도 웃음을 팔았다. 정말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서비스직은 진짜로 웃음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 죽 같아도 웃어야지. 젠장. 그래, 먹고사는 게 설마 나만 힘들겠어? 하는 생각으로 오늘도 진상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퇴근을 했다. 요즘따라 진상이 너무 많아서 지쳤는데, 솔직히 오늘은 연하남이랑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실실 쪼개면서 일을 하다가 팀장님이 한소리 하신다. 제발 좋은 남자 만나라고. 제정신 아닌 거 같다고. 으익! 제정신 아닌 것 같다니.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뭐 그게 뭐 연애 탓인가! 에엠. 사실 오늘은 종일 연하남이랑 연락하느라 기분 좋아서 실실 쪼갠 건데. 크흠.


'저 이제 퇴근해요. 연락이 많이 늦어서 미안해요.'

- 아니에요. 고생 많았어요. 피곤하지는 않아요?

'아 오늘도 진상 물리치느라 조금 지치긴 하는데, 덕분에 버틸만했어요.'

- 고생했어요. 얼른 들어가요. 추운데.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응, 안 그래도 얼른 가려고요. 너무 춥다. 뭐 하고 있어요?'

- 과제하고 있었어요. 룸메랑 이제 저녁 먹으려고요.

'응? 저녁을 이제야 먹어요? 많이 배고팠겠다. 얼른 먹어요.'

- 정민 씨는 배 안고파요? 아까 저녁 안 먹었잖아요.

'아, 체할 거 같아서 안 먹었는데. 슬 배고프긴 한데, 안 먹을래요. 커피나 마셔야겠다.'

- 커피요? 커피 좋아해요?

'응, 커피 너무너무 좋아해요. 나는 카푸치노 좋아해요!'

- 오, 카푸치노. 나도 커피 좋아하는데 ㅎㅎ

'오, 커피 뭐 좋아해요?'

- 저는 아아. 얼죽아.ㅎㅎ

' ㅎㅎㅎㅎ 얼죽아. 라테류는 안 마셔요?'

- 라테도 좋아해요. 대부분 아이스로 마시지만.

' 전 우유가 들어간 커피면 다 좋아요, 히히.'


내내 히죽히죽 거리느라고 추운 줄도 모르고 금세 동네로 날아왔다. 코끝이 시려 근처 카페로 가 라테 한잔을 사들고 나왔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너무 기분이 좋은걸. 들어가기가 싫은걸. 그래서 나는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도 있었고, 강아지 산책을 나온 사람도 있었다. 손잡고 느리게 산책하는 커플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지 언짢았을 테지만. 괜찮다. 난 지금 기분이 좋으니까. 라테도 따뜻하고, 이 사람도 따뜻했다. 대화를 하는 내내 다정한 느낌을 줬다. 가만히 얘기를 하고 있으면, 좋아하는 게 비슷했다. 이상형도 비슷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고등학교 때는 솔직하게 좀 마셨는데, 오히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맥주 한 캔이 어렵다. 담배를 유독 싫어한다. 예의 없는 사람도. 연하남은 술에 취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자리는 좋아하고, 술에 취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적당히 마시고 술에 취한 사람들을 집으로 보내고 나서야 집으로 간다고 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취향도 비슷했다. 왠지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나는 이번 달 말에 있을 친구의 결혼식의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 그 전의 축가 이후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축가를 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친구가 축가를 부탁했고 내가 가장 의지했던 친구라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마이크를 들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쉬는 날이 며칠 없는데, 쉬는 날이면 온종일 코인 노래방에서 한곡만 불렀다. [지아 - 물론] 가사가 너무 예뻤다. 축가로 딱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를 축가로 하려니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잘하고 싶었다. 



가진 게 그리 많지 않아 어쩌면 많이 부족할지 몰라 

가끔 나와 다투기도 하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네게 나보다 좋은 사람 많겠지만 

널 사랑하는 맘 나 그것만큼은 자신 있는걸

내리는 비를 막아줄 수는 없지만 

비가 오면 항상 함께 맞아 줄게

힘든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함께 할게

- '지아 - 물론'



오늘도 하루 종일 이곡만 죽어라 불렀다. 목에서 피맛이 나고, 목소리는 쇳소리가 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하얗게 불태웠다. 노래를 연습하는 내내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축가를 부르는 게 신기하다고 했고, 멋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연하에다가 키도 크고, 나름 귀엽게 생긴 거 같던데. 잘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재미는 있었지만, 연락을 내내 하기가 망설여졌다. 노래를 핑계로 연락을 뜸하게 했지만, 여전히 다정하게 연락이 왔다. 이 사람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쉰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사람에게 많이 지쳤다. 새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스물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니 이제 곧 스물아홉이 되는데.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연락을 하다가 우리는 친구 결혼식날 만나기로 했다.


- 정민 씨, 아니 누나. 우리 언제 만나요?

'아, 어.. 좀 걱정이 되는데.'

- 무슨 걱정이요? 저도 잘난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아 근데 재영 씨는 솔직히 말해서 많이 어리고. 키도 크고. 그만하면 잘생겼잖아요.'

-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누나도 예뻐요. 

나는 내가 누나 맘에 들지 않을까 봐 걱정인걸요.

'에- 그럴 리 없어요. 아마도 보자마자 안아주고 싶을 거예요.'

- 그럼 우리 만나요. 만나서 안아주면 되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나이도 많고, 얼굴도 몸매도 예쁘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볍게 누굴 만나고 싶진 않아요.'

-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누나는 분명 예쁠 거예요.

그리고 나도 누굴 가볍게 만나는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나 봐야 알잖아요, 우리.

'흠.. 그러면 내가 친구 결혼식 이전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결혼식 때 말일에 있는 휴무를 몰아 써서 그때 아니면 시간이 안되는데.'

- 그러면 친구 결혼식 끝나면 몇 시예요?

'음, 한시가 예식이니까. 다 끝나고 인사도 하고 나면 세시쯤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때까지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아, 정말요? 그래요 그럼 우리 동대문역 앞에서 만나요. 12월 23일이에요.'

- 응, 알겠어요. 그때 봐요 그럼.ㅎㅎ


아 큰일 났다. 이 사람이 며칠 내내 재촉하는 바람에 만나기로는 했는데, 걱정이 너무 많이 된다. 환상이 와장창 깨지면 어떡하지. 이 사람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만나보기도 전에 온갖 걱정에 사로잡혔다. 아니 만나보고 별로면 안 만나면 되는걸.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후. 그렇게 또 바쁜 시간을 보냈다. 휴무를 친구 결혼식 앞뒤로 쓰고 나니 더 이상 휴무도 없었다. 종일 근무를 하고 밤 열 시에 퇴근을 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새벽 두 시까지 매일매일 노래를 불렀다. 피곤해서 일하는 내내 졸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동갑내기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팀장님은 참 다정한 사람이다. 키는 좀 작지만, 마음이 엄청 큰 사람. 나는 수제버거집에서 버거를 만드는 일도 하고,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매장의 전반적인 일을 했는데, 그래도 내가 하는데 한계가 있는 일은 팀장님이 먼저 도와주시곤 했다. 이번에 친구 결혼식 축가를 맡게 되었다고 하니 편의를 봐주셨고, 편하게 준비를 했다. 노래 연습을 위해 휴가도 냈다.


- 정민 씨, 축가 잘해. 괜히 또 친구 결혼식 가서 어? 결혼식 망치지 말고.ㅋㅋㅋㅋㅋ

'아, 팀장님. 너무하네! 저주하냐고요! 조용히 해라, 요!'

-아아. 때리지 말고 말로 하라고! 정민 씨한테 맞으면 내 어깨 부러져! ㅋㅋㅋㅋㅋ

'아. 팀장님 진짜 부러뜨린다!!!!!!!ㅋㅋㅋㅋㅋ'

- 아아아아아아앍! 저리 가! 저리 가! 얼른 가버려!

'팀장님,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잘하고 오께연.ㅋㅋㅋㅋ'

- 알겠어 잘하고 와~ 데이트도 잘하고. 

'헛소리 하면 때린다, 팀장님. 지금 퇴근했어. 밖이야.'

- 나 먼저 갈게 미안! 살려줘! 갈게 안녕!


아 얄미워 죽는 줄 알았네. 팀장님은 나 놀리는 재미로 출근한다고 했다. 정말 얄밉지만, 정말 때려주고 싶지만, 나도 팀장님이랑 일을 하는 게 좋아서 출근하는 거라....... 하고 때려줬다. 맨날 이건 하극상이라고 소리 지르면서 도망 다니지만, 나는 진짜로 때리지. 팀장님의 얄미운 격려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우선 결혼식을 가기 전에 입을 옷을 정리를 해두고, 빨래를 했다. 나는 늘 시간이 없어서 퇴근하고 새벽녘에 빨래를 한다. 물론,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옆 건물에 바로 24시간 빨래방이 있어서 괜찮았다. 빨래를 돌려놓고 올라가서 청소를 하고, 다시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 돌려놓는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다된 빨래를 가지고 올라왔다. 빨래를 다 끝내고 나니 새벽 두시반.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축가 연습을 내일 하루 종일 해야 하니까.


느지막이 일어났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지만 오늘은 좀 바쁜 날. 내일 축가로 부를 노래를 연습해야 했다. 아, 젠장. 가사를 잘 못 외우는데 큰일이다. 이전에 축가를 할 때도 가사를 못 외워서 핸드폰으로 보고했다. 다른 친구가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노래를 하는 게 진짜 꼴 보기 싫었다. 일을 하느라 시간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원체 기억력이 약했다. 반복해서 한참을 익혀야 기억나는 정도. 그냥 불렀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데, 어떡하지!


'호방! 나 가사 좀 뽑아줘.'

- 엥? 가사? 아직 안 뽑았나!

'어, 아직 못 뽑았어 ㅠㅠ'

- 내가 퇴근할 때 뽑아서 가져갈게. 노래가 뭔데?

'지아, 물론.'

- ㅇㅋㅇㅋ 알았다. 이따가 가지고 갈게.

'어 ㅠㅠ 절대 까먹으면 안된다 꼭 가져와야 된다.'

- 어어. 내 퇴근 전에 카톡 하나만 보내줘.

'응응. 알겠어!'


다행히, 친구가 가사를 뽑아주기로 했다. 오늘 친구가 퇴근하고 내일 결혼식 가기 전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결혼을 하는 친구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고, 지금 이 친구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친구지 싶다. 아주 옛날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친해진 친구였는데, 중간에 전학을 옆동네로 넘어오게 되면서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결혼을 하는 친구와 이 친구. 그리고 그 이전에 두 번의 축가를 불렀던 친구를 포함해서 총 7명이 함께 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일곱 명이서 내내 친했다. 그러다 두 번의 축가 이후 생각 없는 두 친구들에게 쓰임이 다한 나는 절연을 하게 되었고, 한 번에 친구 셋을 잃었다. 이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과 멀어졌다. 어쨌든, 친구의 도움으로 가사를 프린트 한 종이를 가지고 가서 보면서 부르기로 결정했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다. 내일 목이 쉬면 안 되니까 친구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마사지를 하고, 팩을 했다. 내일 결혼식을 위해 일찍 쉬기로 했다. 잠이 들려는 찰나 친구가 물었다.


- 야, 그래서 누군데.

'어? 뭔 소리고?'

-아니, 니 내일 결혼식 끝나고 약속 있다며. 누구냐고.

'어?ㅎㅎ 나 어 누구를 좀 소개받았는데.'

- 올~ 뭔데? 누군데? 잘생겼나? 몇 살인데? 뭐하는 사람인데? 키는 크나? 어디 사는데?

'야, 하나씩 물어볼래?ㅋㅋㅋㅋㅋㅋ'

- 아니, 그니까 어떻냐고 뭔데 빨리 대답해라, 시끼야!ㅋㅋㅋ

' 어 일단, 학생.'

-?????? 미쳤나?

'아, 왜. 아 근데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듯.'

- 아니 그래서. 몇 살인데.

'어, 스물넷.'

- 도란?????????? 스물넷??????? 몇 살 차인데. 네 살 차이 아니가. 미쳤네 미쳤어!

'야~ 나도 알아요. 미친 거. 그냥 얼굴만 보는 거지 뭐. 만나자고 해서 보기로 했는데, 잘되겠나 뭐.

- 아니 그래도. 잘 될 수도 있지 인마! 키는? 니 키 엄청 중요하다 아님?

'어...... 186 이래.ㅎㅎ 사실 키가 젤 맘에 들어. 아니 그래서 그러면 뭐할 건데. 내가 눈에나 차겠나.'

- 야, 그건 만나봐야 아는 거지. 뭘 벌써 걱정해여.

'야, 거진 한 달을 연락했는데.. 너무너무 다정함. 그래서 솔직히 잘되고 싶음. 나는 무조건 이 사람이 마음에 들 텐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닐 거다이가. 그러면 진짜 와 개 현타 올 듯.'

- 그건 모르는 거니까. 인마. 쫄지 마라. 네가 어때서.

' 아, 모르겠다. 잠이나 자라 인마. 내일 일찍 인나야 된다. 미용실 갔다가 갈라면.'

- 어, 자자. 




- 우리 내일 만나기로 한건 잊지 않았죠? 후아 긴장된다.

'아, 그럼요. 아 근데 정말 걱정되요.'

- 뭐가 그렇게 걱정되요?

'그냥.. 분명히 나는 좋다고 헤실거릴거구.. 재영씨 마음에 내가 들지 않을거에요.'

- 그럼 우리 이렇게 해요.

'어떻게요?'

- 누나가 내가 마음에 들면 나 안아줘요.

'으엥????????'

- 알았죠? 누나가 나 맘에 들면, 안아줘요.

' 그럼, 재영씨가 나 맘에 안들면 어떡해요.'

- 일단, 그럴일 없을거에요.

'아니, 그런게 어딨어요.'

- 나는 무조건 누나가 좋아요. 그럴거에요.

' 하, 그러면 내가 안으면 안도망 갈거에요?'

- 절대요.

'아니, 절대라는 건 없어요. 이세상에. 내가 마음에 안들면 어떡해요.'

- 여기 있어요. 좋아요 그러면 내가 맘에 들면 두팔 벌릴게요. 그럼 그때 안아줘요.

' 두팔 안벌리면, 어떡해? 울면서 도망가야겠다.ㅠㅠ'

- 그럴일 없으니까. 안아줘요. 누나야 말로 도망가지말고. 알았어요? 그리구 일찍자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면서요. 컨디션 조절 잘해야죠. 웃으면서 봐야지, 우리.

'알겠어요.ㅎㅎ'

- 근데 누나 만날때 뭐입지? 누나 어떤게 좋아요?

'음? 나는 코트입는 사람 좋아요.ㅎㅎ 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아, 큰일났네. 코트없는데. 오래된 것 밖에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아요. 무조건 예쁜거에요. 웃어만 줘요.'

- 알겠어요, 일단 얼른 자고 우리 내일 만나요.

'응응. 잘자요.'



걱정이 앞서는 밤. 그렇게 뒤척이며, 겨우 잠이 들었다. 10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 축가로, 처음 만나는 그 사람에 대한 걱정으로. 잘할 수 있을까? 평소 낯도 많이 가리고. 주목 공포증이 있는 나는 걱정이 많았다. 이전에 축가를 할 때도 그렇고, 그것보다 훨씬 이전에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해 밴드부에 들어가려고 한적도 있고, 청소년 페스티벌 오디션에 나갔을 때도 그렇고. 주목 공포증이 있어서 나에게 집중이 되는 것을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축가를 해냈던 건지. 후.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까. 그 사람과 만나는 건 어차피 그러기로 했으니, 그 사람의 마음에 내가 들기만 한다면 좋겠다. 그냥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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