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삼재가 지나가고 있다.

by maudie

서른한 살의 해가 지고 있다. 서른이 되고 나서부터 쭉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물론, 서른에 임박한 스물아홉부터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별이 지고, 사랑을 잃었다. 평생 내 옆에서 괴롭혀 준다던 사람은 떠났고, 나는 시들시들해져 갔다. 가족과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일이 몰아쳤다. 웃음을 잃었고, 스트레스로 건강도 잃었다. 별이 지면서 우울증은 나날이 심해져 갔고, 살은 점점 더 쪘다. 이 정도면 위험한데? 할 만큼의 살이 쪘다. 상상 초월.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40킬로가 넘게 몸무게가 늘었다.


밥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툭하면 토해냈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매일 밤을 울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먹지 않다가 한번 음식을 먹으면 토할 때까지 먹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잔뜩 예민해졌다. 친구를 만나면 그 잠깐만 살아 숨 쉰다고 느꼈다. 함께 일을 하는 직원들이 매일매일 내가 지칠까 봐 걱정을 했다. 일을 하다가 도저히 힘들 땐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제정신으로 버티기가 너무 어려웠다.


별이 지고, 매일매일을 예민하게 살았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고, 늘 나를 챙겼던 그 사람이 나를 챙기는 게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뾰족함은 점점 파고들었고, 그 사람도 나도 지쳤다. 가족들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렇게 그 사람이 점점 지쳐갔고, 나도 시들어 갈 때쯤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났다. 우린 헤어지던 날 울면서 아주 긴 시간을 전화로 싸웠던 것 같다. 그렇게 그가 떠났고,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참 이상하지. 죽을 것 같더니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니 뭔가 정신이 돌아왔다. 미칠 것만 같았던 일들도 무시하게 됐다. 뭔가 나를 자꾸 찌르던 것들이 멈췄다. 시끄럽던 날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뭔가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별의 빛을 잃게 한 죄책감이 조금은 덜했다. 그 사람의 환승 장면을 보고 온갖 정이 다 떨어졌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퇴근을 하면 열심히 걸었다. 쉬는 날도, 퇴근 후의 새벽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 아무거나 들었다. 가끔은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가끔이나마 잠잠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헤어짐의 아픔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득 거울을 봤을 때, 웬 사람이 아닌 사람이 서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으니까.


퇴근을 하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올 때까지 걸었다. 겁도 많았던 내가 어떤 용기가 나서였는지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하루에 세 시간, 길면 네다섯 시간을 걸었다. 일을 하는 내내 서서 일을 하는 터라 다리가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걸었다. 걸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땐 정말 살기 위해 걸었던 것 같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걸었다. 머릿속에 온갖 이야기들로 가득 차 정말 속 시끄러웠는데, 걸으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 가끔은 집 앞 골목에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데, 거기서 커피를 사서 들고 걷기도 했다. 차갑게 식은 커피를 들고 열심히도 걸었다.


게다가 집 앞의 공원이 꾀나 컸다. 내가 자취하던 곳은 고양시 화정동이었다. 도서관 옆의 공원은 생각보다도 훨씬 크고 잘 되어있었다. 나무도 많고 조용했다. 도서관과 학교를 끼고 있는 그 공원은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주말이 되면 조금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조용한 편에 속했다. 공원을 걷는 것을 원래도 좋아했지만, 공원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 반을 미친 듯이 걸었던 것 같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밥도 잘 먹었고, 잠도 나름 잘 잤다.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고, 30킬로가 빠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내가 다시 웃고 있었다.


시간은 많이 지났고, 다시 웃기 시작하고 세상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고, 엄마는 다시 만났다. 엄마도 이모도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고 울기만 했던 그 시기에 나를 늘 살뜰히 챙겨준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친구들도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걸 직감하면 바로 달려와줬지만 정말 따뜻했던 사람이 있었다. 평생을 친언니처럼 챙겨준 사람과, 그 사람의 평생 짝꿍이 되어준 우리 형부. 시간이 날 때마다 당진에서 고양까지 달려왔다. 보고 싶다 한마디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뭐라도 맥였다. 이상하게도 언니랑 형부랑 먹은 건 다 잘 먹었다.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토해내지 않았다. 언니랑 형부를 만나면 잠깐이지만 내가 나로 돌아왔다. 그렇게 언니랑 형부는 매번 당신들이 피곤했을 텐데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나를 만나러 와줬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잠깐씩 나도 내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두 사람이 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다시 돌려보면 혼자가 아니었더라.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면 웃을 수 없다.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하고 억지로 눈물을 삼킬 뿐. 그렇게 스물아홉과 서른을 보냈던 것 같다. 눈물로.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다시 괜찮아졌다고 믿고 있을 때쯤 나타나 이제는 힘들었던 일들은 잊어버리고, 다 놀았으면 자신에게 오라고 한 사람을 다시 만났다. 나이도 있었고, 그 사람도 나도 결혼을 바랐기 때문에 모든 일은 꽤나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새벽 내가 원하던 그대로 둘만의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며 그 사람은 내게 프러포즈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자마자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모든 일이 그 사람이 원하는데로 진행되어서였을까. 그 사람은 내게 본인의 원래 모습을 보였다. 여태 오래 알아왔지만,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아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 몸이 약했던 나는 유산의 위험이 있어, 일을 강제로 그만둬야 했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몸조리를 하는 동안 결혼 준비는 쉬고 있다는 이유로 혼자 해야 했고, 결혼식장을 계약하고 나서부터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냈다.


집착과 기만, 겁박과 협박이 이어졌다.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소리를 질렀고, 협박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분간 일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마치 나를 위해서 인양 이야기했다.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을 항상 붙였다.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할 거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단 하나도 나를 위한 것은 없었다. 손이 귀한 집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지키는 것에만 치중되었다.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만 중요했다. 스트레스로 유산의 위험은 집에서 쉬고 있음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점점 몰골이 되어갔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그 일들을 모두 겪어냈다. 그렇게 결혼식을 치르기 한 달 전, 그 사람과 헤어지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기로 하고 병원엘 갔지만 이미 아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차마 그 얘긴 하지 못하고, 아이를 지웠다고만 했다. 그 사람의 할머님은 그 소식에 쓰러지셨고, 그 사람은 내게 책임을 강요했지만 무시했다.


시간이 지났다. 조금은 괜찮아졌을까 싶으면 다시 울었다.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고, 아가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한동안은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그 사람이 부르던 내 이름조차도 역겹고 소름 끼쳐서 개명을 신청했다. 청첩장에 찍혔던, 그 이름이 너무 소름 끼쳤다. 다행히 온라인 청첩장만 나온 상태였고, 종이 청첩장이 나오기 전이었다. 결혼식도 당연히 취소했고, 그 사람은 위약금을 내게 물라고 했다. 병원에 방금 수술받고 나온 사람한테 할 소리냐고 했고, 나는 내 병원비를 그 사람은 결혼식장 위약금을 각자 알아서 해결하기로 하고 끝이 났다. 그래서 그 일을 겪어낸 그 이름이 너무 싫었다. 거기 남아있을 내 이름이 소름 끼쳤다. 그렇게 나는 개명을 했다.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에 정신없이 바빴다. 결혼을 결심하기 이전에 고양시에서 일을 했던 그 회사의 수원지점으로 옮겨왔다. 수원지점의 책임자 역할을 맡아 정신없이 일을 했다. 이제 막 오픈한 매장이었고, 아무것도 제대로 되어있는 일이 없어서 처음부터 다 해내야 했다. 누구 하나도 제대로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았고, 고양점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내 방식대로 매장을 운영했다. 쉬는 날이 없었고, 쉴 시간이 없었다. 쉬는 날에도 출근을 해서 매장을 챙기고, 본사에서 지시한 일들을 해야 했다. 아침 5시 반이 되면 문자와 전화를 시작됐고,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모든 업무가 끝났다.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급하게 다시 시작한 일이라 몸조리를 한 시간도 없었다.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갔고, 나는 지쳤다.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본사 덕분에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맞는 걸 맞지 않다고 말했고, 책임을 항상 떠넘겼다.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의 진상고객 덕분에 더 이상 버티기도 힘이 들었다. 쉬는 날 진상고객이 개인 핸드폰으로 까지 뻗쳐 나를 약 두 달간 괴롭혔고, 본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매장의 매출을 올리고 정상화를 시키는 동안 내가 해낸 업무에 대해 칭찬은 했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다. 당연히 추가 근무도 급여에 포함되지 않았다. 직원들과 고작 7만 원 차이나는 월급을 받고 일을 했다. 그러다 매장의 직원 중 한 명이 나보다 급여가 많다는 것을 듣고 그때부터는 이일을 내가 이렇게 까지 하는 게 맞을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 회사가 내게 저지른 악행들을 모아뒀고, 일을 못하는 상사의 헛소리도 녹음해뒀다. 물론 내 목소리가 들어간 통화 녹음이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료를 한 달 동안 열심히 모았다. 역시나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왜 그러냐로 시작해서 이따위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할 것이냐로 마무리되었다. 퇴사를 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후임을 구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인수인계에도 문제가 없었다. 모든 자료를 준비했고, 인수인계를 할 수 있게 해 뒀지만 그 상사는 자꾸 내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협박했고, 나는 이사급 부장님을 만나 사직서에 대한 면담을 했다.


부장님은 내게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다. 그 사람은 뻔뻔하게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또 남 탓을 시전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줬다. 내 퇴사를 한 번 더 물고 늘어진다면 고소를 하겠다고 했고, 회사에선 내게 한 모든 행동을 그 망할 상사를 대신해 사죄했다. 회사를 퇴사하자마자 교통사고도 났다. 병원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누워있었던 것 같다. 이제 좀 쉬나 하면 일이 터졌다. 그렇게 지금까지 몸조리를 하며, 3개월가량 쉬고 있다.


3재. 정말 깔끔하게 삼재다. 29. 30. 31. 이제 서른한 살의 해가 지고 있다. 쉽게 겪지 못할 일들을 3년이라는 시간 안에 내가 망가질 만큼 겪었고, 벗어나기 위해 여전히 발버둥을 치고 있다. 아마도 햇수가 아니라 내 생일을 기점으로 3 재일 테니, 아직 내게는 반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어떤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이제 곧, 서른둘이 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새 출발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서지만, 그것 역시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라. 어쩌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니까. 어떻게든 또 해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