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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7. 2020

망구, 나 한강 갈 거야

우울증,  한걸음에 달려온 너.

우울증. 심각한 우울증이 왔다. 자살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힘든 시절이 있었다. 가족과의 심각한 불화와, 헤어진 남자 친구와의 일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남자 친구로 인해 겪었던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들로 우울증이 왔다. 내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조금 심각했던 것 같다. 

매일 울었다. 매일 술을 먹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겪었던 일들이 영화처럼 재생되고, 심한 날은 소리도 들렸다. 그날의 아픔들이 온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 다 느껴질 정도였다. 나에 대한 자책감도 심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두 번을 도로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일을 할 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매일 다치고, 멍하니 있으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그런 나를 보고 안쓰러워서 안절부절 못 할 정도였다. 

그때 나를 시시때때로 만나러 와준 친구들도, 옆에서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던, 함께 일했던 분들에게 아직도 미안하고 고맙다. 이후에 더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도 넘어진 채 매일을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간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하겠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매일 울기만 하던 내가. 그날 스케줄인 마감 근무로 인해 퇴근이 10시가 넘은 내가. 다음날 출근인 내가. [할매, 나 한강 갈 거야.] 하고 카톡을 보냈다.


 갑자기 한강을 간다고 해서 깜짝 놀라서 함께 있던 친구를 제쳐 두고, 그 길로 바로 경기도 광주에서 여의도까지 날아온 너. 혼자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달려와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며, 등짝을 냅다 후려치는 너. "미쳤어!! 미쳤어!!" 하고 등짝을 때리면, " 헤헤, 할매다 !!!" 하고 웃으면서도 엄청 아팠는데 사실. 엄청 아팠어~ 망구. 손이 왜 이렇게 매워. 근데 뭔가 엄청난 위로가 됐어. 토닥토닥. 

너는 그날 집에 가기 싫다는 나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밤새 같이 수다 떨고, 깔깔거리고 웃어줬지. 그때 쪼끔 감동이었어, 망구. 그냥, 그렇다고. 참, 우리 그 날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해서 짜증도 냈는데. 누가 봐도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어린 노무 시키들이 자꾸 날파리처럼 들러붙는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강이 잘 보이는 앞쪽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맥주도 마시고 군것질도 하고 시원한 공기도 마셨어. 진짜 맛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엉덩이가 아파가지고, 누우려고 하니 잔디밭에 돌이 있었어. ‘아야! 아야!.’ 하면서도 굳이 드러누워서 하늘 구경도 하고. 발 맞대고 사진도 찍었는데. (차마 그 사진은 공개를 못하겠다. 우리 둘만의 추억인 걸로.) 우리 그날 진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깔깔 웃었어. 밤새.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나타난 아저씨가 있었어. 한강이 보이는 계단 앞에 혼자 앉아있는 아저씨를 보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바로 앉았어. 생판 모르는 아저씨 등짝이 너무 슬퍼 보인다고 두 시간을 내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지. 

첫차가 뜰 때쯤 춥다 가자 하고 일어나서 집에 갔다가 씻고 출근하는데, 그렇게 피곤하면서도, 피곤하지 않더라. 마음이 아주아주 시원했어. 너무너무 좋았어.




 “김망구, 이제야 말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조건도 없이 달려와줘서 고마워.”

                                                                                '근데 김망구. 있잖아, 나 지금 한강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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