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서 오래 보듬어주는 것을
'가둔다'라고 한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들. #268.

by 마음밭농부

따듯한 내 품에서 오래 보듬어주는 것을

'가둔다'라고 표현한다.

가축을 그렇게 키워서 잡아먹고

반려 동물도 '내가 원하는 것'만 주면서

곱게 가두어 곁에 둔다.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상대가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녀에게, 가족에게 그렇고

식물에게, 동물에게, 자연 만물에게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부담'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부담'을 피하거나 외면하는 이들에게는

배신, 배반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든 사회적 재앙의 진원지는 '가정'이다.

지금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한 때 촉망받던 사회 모범생이었고

부모의 자랑이자 온 마을의 자랑이었다.

오늘 내 가정에서 내 자녀들을

이들과 다르게 키운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가두면 본성이 변하거나 변태가 되기 쉽다.

우리에 갇힌 사자는 이미 사자가 아니다.

교육 교재이자 눈요깃감일 뿐이다.

우리의 자녀는 이미 철창에 갇혀

본성을 잃어버렸거나 변태가 되었고

동족을 먹고 자라 광우병에 걸린 소와

같은 병증이 생겨버린 상태다.

육체적 고생은 추억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 고생은 트라우마라는 상처로 남아

정신 색맹이란 장애를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수많은 정신적 고생을 겪으며 자랐다.

그들은 이미 정신 장애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병증을 치료할 시스템은

어디에도 작동하지 않는다.

보호자가 더 큰 환자들이고

그 시스템을 보완 수정해야 할 이들 또한

또 다른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일이 슬픈 이유다.

애꿎게 추운 날씨다.

언 땅 두드려

작은 씨앗 하나 눈물로 심어 볼뿐이다.


마음밭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