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도망치고 싶었어

by 김윤우

☼오늘의 질문)

우리 아빠(아빠의 딸)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또는 기억에 남는 순간도 좋음!)

큰 딸 작가 되고, 작은딸 군인 된 게 제일 행복하고 기억에 남지!!

나는 못 잊는 순간이 있는데, 아빠 한마디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말이 있음!



서울에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취업은 둘째 치고, 사람이 지독하게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껴본 시기였다.


독립 후 나의 첫 집은 홍대 근처의 한 고시텔이었다. 당시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기 때문에 보증금이 없는 집을 선택했다. 부산에서 미리 조사한 결과 위치와 내부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최적인 곳이었다. 고시원에 도착한 첫날, 아빠가 주신 월세 55만 원을 봉투에 넣어 카운터를 보는 총무에게 건넸다. 그리고 앞으로 지내게 될 방을 안내받았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침대, 책상, 냉장고, TV, 화장실까지 있을 건 모두 있는 공간이었다. 맘에 드는 위치에 가져온 짐을 배치하고 나니 왠지 모를 설렘마저 들었다.


두세 시간가량의 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나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 이틀은 여행하는 기분으로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혼자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꽤 괜찮은 일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내가 동경했던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생활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서울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말은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도와줄 사람 역시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혼자 살아보니 모든 게 막막한 것 투성이었다. 특히 주변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꽤 힘들게 했다. 그 생각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든 것 같다. 그 두려움을 깨기 위해 친한 친구들과 자주 통화를 했다. 실제로 힘을 얻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고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누군가의 연락에 꼬박꼬박 답하는 걸 힘들어해, 늘 방학이 되면 휴대전화를 꺼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걸 좋아했다. 실제로 그렇게 보내온 혼자만의 너무도 시간이 달콤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다시 가족과 친구가 있는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밤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 목소리는 늘 당시의 나를 울컥하게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전화를 끊었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시 부산에 오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고, 어렵게 보내준 서울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매일 밤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흐른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통화를 하다 결국 터져버렸다. 혼자 여기 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털어놓았다. 한참 내 투정을 듣던 아빠는 말했다.


“하고 싶어서 간 거잖아. 아빠가 KTX 표 끊어 줄 테니까 적응될 때까지 매일 부산에서 서울 기차로 왔다 갔다 해라. 그러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겠나?”


아빠는 힘들면 그냥 꿈을 접고 부산에 내려오라는 말 대신,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서울 생활을 버틸 힘이 생겼다.

‘나는 힘들 때 언제든지 갈 곳이 있구나’, ‘서울에 있다가 힘들면 오늘 밤 당장이라도 부산에 가면 되니까 버텨보자’ 그 생각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정말 괜찮아지는 거였다. 아빠의 한마디로 16년을 버텼다. 힘이 들면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빠는 그날 나눴던 대화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날 위해서 당연히 그렇게 해줄 사람이었으니까, 아빠에겐 그때 주고받은 말들이 특별한 대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우리 아빠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큰딸이 작가 되고 작은딸이 군인 된 일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아빠 덕분에 작가가 된 거니까, 아빠 행복은 아빠가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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