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부터 독립할 때

by 김윤우

스물셋 여름, 나는 독립했다.


여름을 다섯 달쯤 앞둔 어느 날, 부모님과 내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고, 작가 생활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고, 서울로 가려면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말하는 자리였다. 한참 동안 내 주절거림은 이어졌고,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엄마와 아빠는 말했다.


“그럼,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부모님은 늘 내게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자신들이 그러지 못해서 자식들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살길 바란단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두 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부모님과 상의 끝에 서울로 떠나는 것을 허락받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서울로 떠나던 날 아침, 아빠는 나를 구포역까지 바래다줬다. 아직 기차가 들어오지 않은 빈 철로 위를 바라보며 나는 아빠한테 마지막 인사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무뚝뚝했던 나는 아마 “잘 도착해서 전화할게” 정도의 덤덤한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의 헤어짐을 싫어한다. 그곳에서는 대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다신 못 볼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누군가를 배웅하고 남겨진 사람의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찡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가 아마 이때쯤부터였을지도.


정해진 시간이 되자 철로 위로 서울행 열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고, 아빠는 홀로 플랫폼에 남았다. 창을 사이에 두고 아빠랑 짧은 손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열차는 서울로 출발했다. 아빠는 열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아빠의 모습이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나를 보내고 홀로 남은 아빠의 모습이 내내 아른거렸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내가 소리 내 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눈물을 언제쯤 그쳤는지 어떻게 종점까지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진짜 독립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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