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입대한 뒤로 아빠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무렵 나는 서울에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동생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군인이 되기 전 훈련소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다섯 명이 함께 살던 집에 부모님과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남동생 하나만 남았다.
2010년 설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막내 작가가 되고 난 뒤에 처음 맞이하는 설날 무렵이었다. 하필 나는 설 특집 프로그램을 하고 있을 때라 본가에 갈 수가 없었다. 훈련소에 있는 동생 역시 부산에 갈 수 없었다. 부모님은 아마 그해 처음으로 나와 여동생이 없는 명절을 맞이하셨을 테다.
여동생은 종종 내게 아빠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줬다. 통화가 어려울 땐 편지에 그 대화를 적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훈련소에서 온 동생의 편지에 아빠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제 아빠도 이 썰렁한 명절을 보내는 데 적응해야겠지.
우리 다섯 식구가 다 모여 사는 날이 언젠간 올까?
우리가 바뀐 삶에 차츰 적응해 갈 무렵 아빠는 외로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빠가 동생에게 쓴 편지 내용을 읽으며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궁금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서 마주 보고 밥 먹을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며칠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이나 휴가를 포함해 매년 평균적으로 네 번 정도 본가에 내려가 주말을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1년에 12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환갑이 갓 지난 부모님과 30년을 더 본다 해도, 평생 웃으며 볼 수 있는 시간이 합해서 1년이 채 안 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