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 진담

by 김윤우


아빠와 나는 애정 표현에 능숙하지 못하다.


가끔 아주 늦은 밤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첫마디가 "사랑하는 우리 보물"이라고 시작되는 날이 있다. 그 말을 한다는 것은 아빠가 거나하게 취해 전화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아빠의 술주정이 싫지 않다. 아빠의 진심을 들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 편견을 깨지 못한 나와 아빠는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다거나, 낯간지러운 말을 자주 나누지 못한다. 그런 아빠도 취한 날이면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표현한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각이었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친구들과 한잔하고 집에 돌아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집에 왔는데 그날따라 엄마와 아빠 단 둘 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썰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보물, 우리 다섯 식구가 이 집에 살 때는 그렇게 넓지도 않았는데, 이제 집이 너무 넓게 느껴진다. 이사를 해야 할까 봐”

“우리가 자주 갈게. 허전하게 생각하지 마”

“그래, 사랑한다”


아빠는 그렇게 보고 싶다는 마음을 건넸다.

나도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조금 취했던 날,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빠~ 저녁 먹고 산책 중인데 날이 참 좋아서 아빠 생각이 나서.

부산 가면 같이 산책하자. 사랑해

- 그래 보물, 꼭 그렇게 하자


여전히 우리 부녀는 감정 표현에 서툴다. 그래서 가끔은 아빠와 1일 1문답을 시작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색하지 않게 낯간지러운 표현도 은근슬쩍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는 취기를 빌리지 않고도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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