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록

아빠의 일기

by 김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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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겐 오래된 일기장이 있다.


예순이 넘은 아빠는 아직도 매일 일기를 쓴다. 그 안엔 함께 나눈 대화도 있고, 우리의 오고 감이 담겨있다. 본가에 갈 때면 아빠는 내가 부산에 왔다는 사실을 기록해 둔다. 내가 비행기를 탔는지 기차를 타고 왔는지 교통편과 함께 도착한 시간이 적혀있다. 오고 간 이유와 함께 말이다.


아빠의 꾸준히 일기를 쓰는 끈기는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일기 쓰기는 자주 도전하지만, 도전하는 횟수만큼 자주 실패한다. 내가 쓰는 일기장엔 나의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아빠의 일기장엔 우리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나와 여동생은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아빠의 일기장을 몰래 읽어본다. 아빠가 평소에 뭘 하면서 지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일기를 훔쳐본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묘한 재미를 즐긴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부산에 가 있어도 아빠는 저녁이 되면 일기를 쓰며 하루 마무리를 준비한다. 그런 아빠를 보며 여섯 살 난 조카가 물었다.


“할부지 모해요?”

”할아버지 일기 쓴다. 오늘 누구랑 뭐 했는지 매일 기록하는 거“

“어? 할부지가 쓰는 공책 엄마랑 이모가 부산 오면 맨날 보는데”

예상치 못한 타이밍, 악의 없는 고자질에 제 발 저린 우리는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렸다. 어쩌면 아빠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것과 상관없이 아빠만의 이야기를 쓰는 공간이었다.

아빠의 일기는 처음에 웃으며 읽기 시작하지만, 어김없이 눈물을 빼고 나서야 덮게 된다. 그 속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빠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녀간 뒤에는 특히 그렇다. 우리에겐 말하지 않았던 감정이라 일기장을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야기다. 자주 마음이 시큰해진다. 어쩌면 오늘도 우리가 통화로 나눈 대화가 아빠의 일기장 한편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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