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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Jan 15. 2023

산후조리와 투머치 골든타임

성공한 산후조리는 무엇일까? 젖몸살, 유축, 부기 빼기

출산이 끝나면 산후조리의 시간이 찾아온다. 산후조리는 크게 ‘내 몸 관리’와 ‘아기를 위한 몸만들기’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순산을 하기 위해 벌어진 뼈 마디마디가 제자리를 찾고 아이가 빠져나가고 남은 늘어진 뱃살들이 천천히 이전으로 돌아오도록 기다려주는 시기. 여기에 아이를 먹일 모유를 잘 만드는 몸으로 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연분만을 하고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낸 뒤 나는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는 산후조리원이 없어서 처음부터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다니며 같은 건물에 있는 조리원을 예약해 두었다. 가족들의 손을 덜 빌리고 산모도 아이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산후조리원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때문에 방역이 강화되면서 남편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산후조리원 방침이 마음에 들었다. 멋몰랐던 첫째 때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면회를 오고, 친구들에 화분, 과일까지 들어와 항상 분주했다. 덕분에 적적할 틈이 없었지만 충분히 쉬기가 어려웠다. 또 넓지 않은 침대를 남편과 같이 써야 했는데 큰 도움도 안 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좀 답답했다. 해서 이번에는 '충분한 휴식'과 '회복'을 목표로 나 혼자 조용히, 조캉스(조리원+바캉스)를 즐겨볼 요량이었다.


큰 TV가 마음에 들었던 산후조리원.


휴식과 회복을 목표로 몸조리를 하려고 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허리. 첫째를 낳은 후 두 번의 유산을 한 후로 허리가 아파서 내내 고생을 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졌지만 정형외과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인과 쪽으로 방향을 틀고 서울 큰 병원부터 용하다는 전국의 한의원, '명의'에 출연한 의사까지 찾아다녀봤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자궁외벽이 두꺼워 신경을 눌러서 그렇다며 수술을 권유받기도 했는데, 다른 병원을 또 찾아가 물으니 굳이 수술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하고 하루하루 버텨가는 중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산후조리를 잘하면 허리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방법이라 그냥 흘려버렸었다. 허나, 기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 산후조리를 정말 잘해서 허리를 고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조막만한 신생아의 발


그런데 산후조리도 오래되면 잊혀지는 걸까. 출산처럼 너무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왔다. 먹고 쉬고, 유축하는 틈틈이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부터 모유수유 전문가가 운영하는 채널을 찾아가며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갔다. 산후조리의 원론은 7년 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전과는 달라진 부분들이 제법 있었다.


유튜브와 산후조리원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골든타임'이었다. 모유수유 골든타임, 부기 빼기 골든타임… 모든 말 뒤에 '골든타임'이 붙었다. 모두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모유수유 골든타임은 출산 후 사흘 안에 젖이 도는데, 이때 제대로 젖을 물리지 않으면 '완모'하기는 어려우니 부지런히 물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산후조리원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축타임마. 방호수와 유축시간을 적어 신생아실에 배달한다.

또, 아이를 낳고 하루이틀 정도는 살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있다가 사흘째부터는 다리가 코끼리 만해질 정도로 붓기 시작했는데 이 부기도 조리원에 있는 동안 빼지 않으면 내 살이 되고 말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이어트 골든타임은 출산 후 6개월까지라는 속설도 있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조여 오는 것 같았고 쉬고 있지만 쉬는 기분이 아니었다. 조리원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하루 5끼를 싹싹 긁어먹다가도 '어? 이러다가 부기가 안 빠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먹고 누워서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살이 빠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기에 점점 딴딴해지는 가슴을 풀어서 젖을 짜야한다는 압박감도 밀려왔다. 아기를 데려와 젖을 물려야 하나 어쩌나 누워있다가도 몇 번을 일어나 앉았다.


그러다가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것은 커피 한잔 덕분이었다. 조리원 마사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다가 산후관리사님이 물었다.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나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커피 한 잔만 딱 마시면 좋겠어요.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요." 관리사님은 본인이 마시려고 가져온 커피믹스를 나에게 쥐여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직 젖이 다 도는 건 아니니까,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산모님이 즐겁고 기분 좋아야 해요. 여기서는 뭘 더 하고, 잘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편히 쉬고 간다 생각해요. 수유콜도 피곤하면 좀 쉬고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니까 길게 생각해요."


방으로 돌아와 나는 믹스커피를 타서 한 모금, 또 한 모금 천천히 마셨다. 그동안 먹었던 그 어떤 커피보다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골든타임'이라는 말에 바빠졌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산후 골든타임을 지키려다가 골병든타임이 되지 않도록 하나 둘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타야 제 맛이 난다. 산후관리사님께 받은 커피 한잔.

모유수유가 중요하지만 한 템포 늦춰 가보기로 했고, 끼니때마다 종류를 바꿔가며 나오는 미역국은 모두 비우고 모든 음식을 천천히 충분히 먹었다. 조리원에 있는 큰 TV로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드라마를 틀어놓았다. <나의 해방일지>, <스토브리그>, <사내맞선>을 보며 밥을 먹고 유축을 하고 매일매일 마사지를 받았다.


성공한 산후조리란 무엇일까. 잘은 모르지만 호르몬 때문에 들쭉날쭉하는 기분에 지배당하지 않고 내 몸이, 내 기분이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전과 같아질 리가 없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흘러나올 때도 있지만 열 세 밤 동안 나도 아기도 더 단단해져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진짜 육아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경력직 산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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