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하는 산모에게 하면 안 되는 말
나는 누구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시절 손바닥만 한 하숙집에 살 때도, 도시락만 한 원룸을 구해서 아기자기하게 꾸미기를 즐기며 내 공간에 머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집밥을 먹을 수 있는 고향 집도 편했지만 다시 돌아와 보잘것없는 내 침대 위에서 안락함을 느꼈었다.
그러던 내가 출산을 하고는 달라졌다. 하루종일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시간이 너무 힘겨웠다. 집으로 돌아와 산후도우미 매니저님이 계시는 3주 동안은 그나마 괜찮았다. 매니저님이 미더워지고 난 뒤에는 하루 한두 시간 정도는 집을 나와 한의원도 가고 차도 한 잔 마시며 바깥공기를 쐬었다.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가니 처음에는 약간 어지러운 것도 같고, 몸도 으슬으슬한 것이 잠깐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카페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이상하게 귓가에서는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집으로 간 날이 더 많았다.
매니저님이 가신 뒤부터는 우울감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무엇보다 몸은 여전히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데 혼자 집에 남는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말 그대로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특히나 남편은 3교대를 하는 일이라 9시에 출근하면 그다음 날에 퇴근을 했다. 게다가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한다며 퇴근하고 훈련을 하고 들어왔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막막하고 답답할 수 없었다.
보통의 일과는 이렇다. 2시간에 한 번씩 아기에게 수유를 하는데, 나는 유축을 해서 수유하는 길을 택했다. 일단 수유 후 트림을 시키고 잠깐 재우고 다시 유축을 한다.
그런 다음, 젖병을 씻어서 소독하고 유축을 하고 아이가 깨면 수유하고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돌리고… 또 반복. 너무 피곤하니까 밥을 먹기보다는 그냥 눕고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하루에 한 끼조차 제대로 먹기 힘들었다.
아기와 씨름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큰 아이가 하교를 한다. 큰 아이 밥을 대충 먹이고 숙제시키고. 그러는 사이에도 아기 수유하고 안아주고. 그렇게 밤이 되면 온몸에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 든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쪽잠을 자다 일어나면 더 피곤한 기분, 물에 젖은 솜같이 몸이 무겁고 늘어지는 기분인데 문제는 이 느낌이 계속된다는 거다.
나와 아기만 집에 놔두고 일상으로 나아가는 남편에게 늘 화가 났고, 전화만 오면 나는 '여보세요' 대신 ‘언제 와?'를 먼저 말했다.
그런 하루가 서서히 모여 마음속에 쌓였던 답답함, 억울함이 눈덩이만큼 커지게 되었고 결국 뻥! 하고 터지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실컷 퍼부어도 봤지만 가슴속에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이곳에서 꺼내줄 수 없었다. 남편도 몇 번은 참고 나를 이해하는 것 같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산후우울증 같아."
"그래서 뭐? 왜? 산후우울증이면 뭐?" 아니 산후우울증인 걸 알면 일찍 와서 아이를 돌보거나 뭐라도 해야지, 그렇게 내뱉기만 하면 어쩌란 말인가. 공감할 수 없으면 가만히 두면 되는데 위로를 한답시고 이런 말 저런 말,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하는 것도 진짜 싫었다.
물론 남편이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고 방법을 찾아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보다는 화가 먼저 났다.
아이를 낳고 몸이 얼마나 힘든지, 하루 종일 아이와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아기 돌보기를 무한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제일 싫었던 말은 바로 이거였다.
"같이 일하던 00이 알지? 애가 연년생이라서 와이프가 엄청 힘들어했는데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예요.' 그러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고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네."
나는 지금 버겁고 힘든데, 무작정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라니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얼척이 없어서 뻥져있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 한 말이 더 화가 났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래. 다 힘들대."
다 힘들면 뭐! 다 참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정말 속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더 화를 낼 힘도 없어서 그날 밤 아이고 뭐고 혼자 캄캄한 방에 들어가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나를 위로하고 돌볼 사람은 정말 나 밖에 없구나. 아기 낳을 때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었던 진통의 시간이 다시 생각났다. 정말이지 누가 알아주고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가는 내 속만 터져나가겠다 싶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기분과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잠깐이라도 무언가에 몰입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독서대를 세워놓고 유축을 하면서 한 두 장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가 너무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울적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특히 그때 읽었던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라는 책이 절절하게 다가왔는데 나와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은 분의 이야기라 더 의지가 됐던 것 같다. 나처럼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도, 남편이 너무 야속했다는 이야기도,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에서도 힌트를 정말 많이 얻었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놓친 드라마를 챙겨보고 주인공에게 빠져들었다. 몸과 마음은 여기에 있지만 생각만큼은 외출시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때 추천으로 본 미드가 ‘워킹맘 다이어리’였는데 띄엄띄엄 봤지만 적지 않은 위로를 얻었다. 아직도 이 장면은 기억에 생생하다. 흔들리는 자아를 찾다가 뜻하지 않게 모유수유를 못하게 된 엄마가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상담선생님이 그녀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요. 분유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책과 드라마에 의존하며 조금씩 천천히 내 마음을 다 잡고 또 다잡아 갔다. 그러다가도 늦은 밤 아기가 깊이 잠이 들지 않고 칭얼대면 아기를 안고 온 집안을 서성대며 주문처럼 혼잣말을 했다.
"우리 00이는 엄마만 믿고 세상에 왔지? 그러니까 엄마가 더 씩씩해져야겠지? 그렇지?“
나 하나 믿고 그 험한 길을 와준 아기는 엄마의 깊은 우울감이 이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아기를 달래며 내 마음도 같이 토닥였던 것 같다.
다행히도 100일의 기적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100일 즈음 아이가 4시간, 5시간 나름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차츰 내 기분도 나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많이 울어야 한다.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리고 드러눕고 싶으면 눕고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다 휘둘려야 모든 게 끝이 난다. 결국 시간이 이긴 셈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힘들 때 이 말만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예요. 결국 끝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