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과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
복직 문제 때문에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동료 두 명과 점심 약속을 하고 가는 길이었다. 근처에 새로 생긴 베트남쌀국숫집으로 향하는데 몸이 가벼웠다.
터질 것 같던 기저귀 가방도 없었고 아기띠도 안 하고 있었으며 항상 내 손을 잡고 있던 큰 아이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출산 후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먹는 첫 외식이었다. 출산 162일 만이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테이블 위로 빠르게 음식이 올라왔다. 그 음식들에서는 ‘배달’에서 느끼지 못한 뜨거운 주방의 열정이 느껴졌고, 배달용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묻어 있었다.
음식도 정말 맛있었고 동료들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다들 아이를 한둘 키우고 있기에 학원 보내는 이야기나 돌봄, 그리고 시시껄렁한 회사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동네에 새로 생긴 맛집, 분위기 좋은 카페, 용하다는 점집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막혔던 수다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 같다가도 혹시나 내 말만 너무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잠깐씩 머뭇거렸다. 머릿속으로 먼저 이 말을 해보고 저 말도 해보며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카톡만 해서 그런가 상대를 눈앞에 두고 하는 대화가 너무나 낯설게 다가왔다.
게다가 내가 하는 말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했다.
“산후관리사님이 그러는데, 그 집이 용하대. “
“그 관리사님이 원래는 다른 데 있다가 왔는데…“
“아, 그건 맘카페에서 봤는데... “
산후관리사님이…
그 관리사님이…
아, 맘카페에서 봤는데
조리원을 나온 후에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산후마사지를 몇 회 더 끊었는데, 매주 한 번 관리사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로운 정보나 동네이야기의 출처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맘카페에서 ‘눈팅’으로 보다 보니 모든 대화의 시작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게 됐다.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누구와 대화를 하며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이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하는 사람은 5개월 된 아기와 8살 초등학생, 그리고 가족들. “우리 아기 일어났어? 맘마 먹을까?”로 시작해 “응가했어? 동화책 읽어줄까?” 로 이어지는 하루.
동화책을 읽어주고, 동요를 틀어놓고 또 따라 부르고. 첫째와는 학원과 친구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자, 사랑해”로 끝이 났다. 남편과도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시댁, 친정이야기, 회사 이야기 약간이 다였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인터넷뉴스를 조금 보다가 맘카페에 들어가서 글 제목만 몇 개 보고, 외출은 이틀에 한두 번 동네 도서관 아니면 카페, 마트를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필요한 것을 배달시키면 어떤 날은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를 만날 수야 있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둘째라 그런가 굳이 애를 둘러업고 가서 밥을 코로(!) 먹게 되는 약속은 엄두조차 내지도 않았다.
육아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하루종일 아이랑만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해주고 언어 감각을 깨워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에 옹알이하는 아이에게 맞장구를 쳐주고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혼자서 계속 말을 한다. 대화가 아니라 말.
대화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시시껄렁한 이야기들 뿐이라도 아이처럼 맞장구를 치고받아주는 노닥거림이 정말 필요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머리가 멍해졌다. 말을 할 때도 “어.. 그거 있잖아요, 뭐였지, 그거?” 단어가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할 때나 들을 때 눈을 마주치고 리액션을 하는 게 조금 어색했다고 해야 하나. 불과 6개월 만에 대화기능이 ‘퇴화’ 되어버린 내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대화기능 저하에 약간의 불리불안이 생긴 건지 자꾸 애 생각도 났다. 정작 애는 내 생각을 안 할 텐데도.
출산과 육아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쪽 문을 열고 나와 다음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감각이 발달하고 스킬을 장착하는 대신 전에 있던 날카롭고 예민한 감각들이 조금씩 무뎌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예전의 나는 어디 갔을까. 집에 돌아와 늘어진 내복 티와 헐렁한 바지로 갈아입고 나서 한참 동안 말할 힘이 없어 앉아 있었다. 하루치 할 말을 다 꺼내 쓴 느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가끔은 집 말고 밖으로, 육아 말고 다른 이야기, 오늘 저녁에 뭐해먹지 말고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나의 새로운 세상에서도 즐겁게 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