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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Feb 22. 2023

100일 후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이가 없었던 시간에는 뭘 했더라?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고 약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버겁고 힘들던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평화가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적응’ 때문이다.


신생아는 먹고 자고 울고 보채는 일을 100일 동안 하면서 세상에 조금씩 적응을 했고, 산모도 마찬가지로 그 일을 해내는 데 적응을 해버린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의 수면 패턴을 예측할 수 있어서 조금은 계획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몸도 조금씩 회복되어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데 힘을 보탠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100일. 나도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여서 가능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적응이 되고 나니, 그때부터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한 팔보다 작은 아기가 어느새 제법 묵직해지더니 이제 슬며시 웃는 모습도 보이고, ‘끙-차’ 하고 응가를 누는 귀여운 모습도 보였다. 배가 고플 때는 필사적으로 울어재끼다가 배가 제법 부르면 혀로 톨톨 밀어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수면의식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7시가 넘어가면 목욕을 시키고 두 번 정도 수유를 더하면 그래도 오래 잠을 잔다는 것을 알았기에 보채는 아이를 더 꽉 끌어안을 수 있었다.


이제 남들이 말하는 둘째는 뭐든 다 예뻐 보이는 ‘마법’이 시작된 것만 같았다.


이상했던 것은 불과 100일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둘째가 없었던 시간이 정말 까마득히 기억이 잘 난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큰 아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7년 넘는 시간을 살아왔는데, 우리 셋만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언제 울고 웃었는지 잘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우리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아기를 돌보는 동안 첫째는 숙제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아기를 재우고 나면 큰 아이와 따로 시간을 보내거나 조금 누워있었다. 수유가 끝나면 큰아이는 수첩에다 먹은 시간과 양을 부르는 대로 적어주었고, 어떤 날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마,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했어!”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가족 모두가 이 생활에 적응한 느낌이었다.

가족의 탄생

또 하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안아주기의 힘’이었다. 눕혀두면 혼자 놀던 아이가 무언가 불편한 기분이 들면 울기 시작하는데, 희한하게 안아주면 울음을 멈추는 거였다.


마치 안아주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울다가 뚝 멈추고 조금 얼르면 방글방글 웃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두 팔로 이 아이를 안고 바라본 것뿐인데 어느 때는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기분 좋게 웃어주기도 하는 게 갑자기 신기하게 다가왔다. 포근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따뜻한 품이 그저 좋은 것일까?


나보다 먼저 아이 둘을 낳고 주말부부를 하면서 회사까지 열심히 다니는 동료와 통화를 하다가 ”아니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그러는 게 갑자기 신기한 거 있죠? 이것도 둘째라서 그런가? “ 그랬더니 그 친구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언니, 안아주면 울음 뚝 그치는 거 신기하죠? 근데, 안아줬는데도 울음 안 멈추면 더 신기할 걸요? “


아 맞네. 분명 안아주면 울음을 멈추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안고 있어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제풀에 지쳐야만 진정이 되는 날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동동거리며 아이를 안았다가 내려놨다가 결국은 그칠 때까지 안아줬던 날들. 그런 시간들이 모여 안아주기의 신비함을 느끼는 날까지 온 것이었다.


’ 적응‘을 해버린 육아.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 어쩐지 이런 시간은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불안하다. 무언가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백일의 기적, 이다음 단계는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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