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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Mar 06. 2023

아이도, 회사도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복직 첫날 이야기.. 내 성과보다는 아이의 성장이 중요한 시기


복직 첫날이었다. 애 둘 엄마로  처음으로 나서는 길.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는데 눈을 일찍 떠졌다. 5시부터 일어나 울어대는 아기 덕분이었다. 여느 날처럼 벌떡 일어나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살폈다. 잠시 아이를 안아준 다음에 빠르게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갑자기 기침을 하는 꼬맹이, 너도 엄마가 출근하는 거 아니?

먼저 밥을 안치고 콩나물무침을 빠르게 만들었다. 칭얼대는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있다가 남편과 교대를 하고, 씻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큰 아이 밥을 차렸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운전대에 앞에 앉으니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꽤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아직 출근도 안 한 거 실화냐.


태어나 6개월 동안 멀쩡하던 아기가 복직 전 날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미열도 살짝 있었다. 아놔 왜 하필 지금!!! 남편에게 병원에 데려가보라고 하고 두 녀석을 맡기고 나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오랜만에 운전을 하니 있던 신호도 안 보여 100% 내 잘못으로 사고도 날 뻔했다. 상대편 차에서 나는 “빠-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에 도착하니 내 책상에는 아니나 다를까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안 쓰던 PC도 새로 세팅을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필요한 물품을 빼고 짐은 최소화했고, 그나마 가져온 짐도 펼쳐놓지 않고 그냥 넣어두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 닫힌 업무 계정들을 열고 나니 오전시간이 다 지나갔다. 출산휴가(90일)를 포함해 7개월을 쉬었을 뿐인데 새로운 곳에 처음 온 기분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없는 동안에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다 바뀌었다. 바뀐 팀원과 업무분장을 하고 있는데 팀장한테 전화가 왔다.


“아, 00 씨 이번에 00 씨는 1년만 계약 연장됐어요. 참고하고 열심히 해보자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와 같은 계약직들은 2년 근무 후에 2년 연장을 하는데, 나만 1년만 연장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공문이 뜬 걸 보니 사실이었다.


인사팀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육아휴직 때문에 근무일 산정에서 점수를 잃었고, 과 전체 다면평가에서 점수가 0.3점 부족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회사의 배려를 많이 받았고, 회사입장에서는 쉬는데 성과까지 높이 평가해 줄 리 만무했다. 그러니 이것은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속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해는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지 눈물이 났다. 혼자서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관둘 생각이 아니면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까. 사실 출근 2주가 지난 지금도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생각하고 또 하면서 겨우 찾아낸 답은 이것이었다.


‘소중한 생명을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건강하게 아기가 태어나길 바랐던 임신 기간을 떠올렸다. 딱 그거 하나 바라며 한 단계 한 단계 통과하던 그때. 이제는 내 성과보다 아이의 성장이 중요한 시기니까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첫날부터 회식을 했다. 새로 온 부서장과 만나는 자리여서 복직 전부터 공지를 했던 터라 빠지기가 쉽지 않았다. 분위기는 좋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맡은 바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건배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회사 이야기도 하고 건의사항도 이야기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가 할 말도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부서장한테 내 계약기간 이야기를 하며 자꾸 열심히 해야 한다는 팀장의 이야기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웃어넘겼다. (아니,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왔는데 더 열심히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영혼 없이 앉아있는데 전화와 카톡이 울렸다. 첫째의 연락이었다. “엄마 어디야 빨리 와! “ 둘째는 기침을 계속한다고 하고, 첫째는 엄마가 와야 숙제를 한다고 하고. 이쪽저쪽 모두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버티고 버티다가 내 마지노선인 9시 10분에 일어났다. 10시까지는 집에 가야 하니까.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회식‘마저’ 열심히 하던 내 모습과 (가끔이었지만) 즐겁게 일할 때의 나의 모습까지 모두 열정이 있고 여력이 될 때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회식’ 같은 건 성가신 업무 중 하나이고, 사람들과도 굳이 적극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원해서 내려놓은 게 아니고 저절로 놓아졌다.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고 하루종일 육아에 지친 남편을 달랬다. ‘괜찮다’고는 하는데, 내가 그 마음 알지. 숙제도 봐주고, 내일 먹을거리도 챙기고, 아프니까 더 보채는 아이를 남편과 번갈아 가며 안다가 나도 남편도 2시간 이상 이어 자지 못하고 다음 날을 맞았다.


퀭한 눈으로 출근을 하니, 옆자리에 앉은 미혼인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어? 피곤해 보이시네요. 어제 일찍 가셨는데, 많이 못 주무셨어요?” 순간 뭐라고 답할까 하다가 그냥 “네, 잠을 좀 설쳤어요.”라고 답했다. 회식은 새벽 1시까지 이어졌고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집도 회사도 버거울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봉태규가 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라는 책에서 읽은 것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직장에서 엄마의 태도란 직업이 없는 여성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고. “


정말 너무너무너무 맞는 말이다. 아이도 회사도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엄마가 출근이라도 아이는 하던 기침을 멈추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다 해야 퇴근을 할 수가 있다. 집에 일찍 가더라고 좋은 결과물은 내야 한다.


출근 첫날부터 이렇게 버거운데, 과연 매일매일 해낼 수 있을까. 이미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잘’을 뺐지만 그 마저도 버겁고 무겁고, 무엇보다 집에 항상 일찍 가는 데도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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