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이 되나요?"
"바빠서 안 돼요!"
어릴 적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중국집에 전화를 걸면 한 그릇은 배달이 안된다는 쌀쌀맞은 답변이 되돌아오곤 했다. 내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표현을 한다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거절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답변이 돌아오기까지 긴장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중국집에 전화를 할 때는 엄마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셨다.
그날도 짜장면이 엄청 먹고 싶은 날이었다. 엄마는 외식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배달 음식은 사정을 해야만 가능했지만, 그날따라 엄마의 허락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엄마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짜장면은 먹어도 되지만, 대신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침이 가득 고인 입안은 사막처럼 바짝 타들어 갔다. 내가 전화 거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내게 그 고통스러운 일을 시킬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짜증도 부리고 떼도 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먹고 싶으면 직접 전화해라."라는 단호한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1시간 가까이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엄마의 단호한 태도도, 짜장면을 먹고자 하는 나의 욕망도 변함이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거는 것 대신에 길 건너에 있는 중국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얼굴을 보고 말하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전화가 무서웠던 것은 보이지 않는 목소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직접 얼굴을 보면 내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고, 말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꽤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중국집 앞에 도착해서 상황을 살폈다. 중국집 입구는 열려 있었고 구슬로 만들어진 발이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다. 발아래로 안을 들여다보니 홀 안은 제법 한가해 보였다. 이쯤이면 작은 내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줄 것 같았다. 나는 주인아주머니께 다가가 손가락으로 우리 집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머니, 저기 성당 뒤가 저희 집이거든요. 짜장면 한 그릇만 배달해 주실 수 있나요?" 쪼그만 여자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조물 거리며 말하는 것이 귀여웠는지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알겠다고 말해주셨다. 그 뒤로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마다 중국집으로 달려가서 직접 주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에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어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짜장면도 못 시켜 먹는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떼굴떼굴 구르며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도 내 감정을 고분고분 이해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힘들다고 회피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기어이 얻어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속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시켜주지 않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엄마에 대한 원망을 안고 살았다. 엄마가 나를 거절했다고만 생각했다. 내 감정을, 내 존재를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엄마처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사달라는 것을 사주고, 사줄 형편이 안되면 만들어서라도 그것을 손에 쥐어 주었다. 하기 싫은 것은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앞에 돌이 있으면 치워주며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내가 방에서 혼자 느꼈던 서러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울리지 않고 키웠다.
아이는 자라면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 낯선 상황에 위축되고, 거절에 겁을 먹었으며, 긴장감에 압도되곤 했다. 아이는 그런 자극을 피해 점점 '자기만의 방'안에서 나오기 싫어했다. '방' 안에 있어도 자신을 대신하여 감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엄마가 있기에 불편함을 감당하지 않았다. 아이가 '방'안에 머물게 된 이유는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두게 된 것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독립을 막는 것은 바로 나였다. 밖에 나갈 능력을 키워주지 않게 되면 아이는 영원히 '나의 아이'로만 남게 될 것이다.
엄마가 내게 주었던 사랑의 방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아이이게 돌려주고 싶다. 그 옛날 엄마가 내게 대했던 것처럼, 모질고 냉정해 보이더라도, 혹시라도 나처럼 철이 없어서 엄마를 원망하게 될지라도, 친절하고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고 싶다. 돌봄이란 눈앞에 돌을 치워주며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돌을 넘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아이'를 존중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기보다는, 잠재성을 믿고 싶다. 당장의 편안함을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불편함을 견디며 끝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어려운 퀘스트를 클리어한 후 먹는 짜장면의 맛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