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

by 정희주

"우리 반에서 신성우 좋아하는 애 있어?

내가 신성우 좋아하니까 아무도 좋아하면 안 돼! 알았어?"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일진이 교탁 앞으로 나와 꽥 소리를 질렀다. 일진은 소유욕이 강한 아이였다. 더플코트가 유행일 때는 자기랑 비슷한 코트를 입은 아이들을 괴롭히며 욕을 했다. 그래서 우리 반에는 아무도 더플코트를 입은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 아이가 가수 신성우를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아무도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시 신성우 가수에 대한 인기는 매우 높아서 우리 반에도 나를 비롯하여 신성우를 좋아하는 애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일진의 경고에 입이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는 교실에서는 신성우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일진이 들을까 봐 무서워서였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 이름조차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내 뜻대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을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질투를 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강한 소유욕을 드러내며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되지만, 겁을 먹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나는 힘 있는 일진의 기세에 눌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신성우'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누구보다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일진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에 대한 애정보다도,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탓이었다.


그 이후의 삶에서도 주변과 갈등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지배할 만한 힘이 없으면 순순히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 눈치 보는 일이 더 많아졌다. 사회적 역할과 경제력이 없다 보니 그야말로 가진 게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의 평판까지도 신경이 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 일 뿐었다. 착한 사람이 되어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점차 사회적으로 옳은 행동만 하는 도덕적으로 흠결없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누군가의 작은 비난에도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렇게 오만 사람에게 신경쓰는동안,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이 생겼을 때 온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은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일진이 '신성우'를 좋아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누군가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다. 누가 옆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말리는 사람의 마음조차 거슬리게 하고 싶지 마음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과도한 자기 방어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항상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게 한다. 사랑은 집착하던 자아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는 일이니 말이다. 내가 한계를 넘는 일은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한계 앞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을 가장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아버지와 이별한 날이면서 동시에 아버지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종종거리며 집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고, 중요하지 않은 요청은 거절하며 사랑하는 이 곁에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선물 받았다.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은 누군가의 방해가 아니다. 오만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허기진 마음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단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만큼 자유롭다.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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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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