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극단의 획일성 안에서 살아가는 올가, 마샤, 이리나 자매와 남자형제 안드레이의 삶을 실크 스크린 삼아 투영되는 살아감의 고됨.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가 뒤섞인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 선동하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구호.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질식하는 사랑. 욕망이 가득한 대도시에서 값싸게 소비되는 인문과 예술, 단조로운 시골생활에서 역류하는 대도시에 대한 그리움.
선먕한 색채를 자랑하는 양 극단의 이데올로기가 보여주는 데칼코마니와 달리 접혀진 중앙 부위에 번지듯 애매한 빛깔로 뭉쳐지고 떡져있는 사람들은 자꾸만 왜 사는가라는 질문의 끈을 놓치곤 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해 지는 순간. 그 허무의 황량한 대지 위에서 허무주의의 싹이 틉니다.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의 탄생.
니힐리즘이 왜 주체적인 한 인간의 삶을 이끄는 등대일 수 있는가에 대한 마지막 죽음의 파티.
하나, 하나, 자신의 사연과 함께 자살을 합니다.
부제 죽음의 파티가 중의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는 죽음의 Party, 죽음의 축제.
하나는 죽음의 fati, 죽음의 운명.
죽을수 밖에 없는 운명조차도 스스로의 손으로 자살을 함으로써 삶을 주체성의 축제로 만드는 허무주의?
뭐 그런 이야기인가?
원작을 10번도 더 봤다는 70대 신사가 원작을 너무 비틀었다면서 체홉이 일어나면 깜짝 놀랄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음..저는 이 변주가 마음에 듭니다. 19세기 노래가 여전히 재현되기에는, 지금은, 2023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