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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Jun 04. 2024

<도을단상> 447.광야(Wilderness)

과잉감정과 과소이성

<도을단상> 447.광야(Wilderness)


한 통의 전화, 울부짖는 어미.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알리는 앵커의 목소리.


어미는 연극배우입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와는 담을 쌓고 연극 생활에만 충실했던.


그녀의 연극생활과 괴리된 현실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은 아들의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의 페드라와 페드라 콤플렉스의 틀을 빌려 액자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이웃 국가인 크레타 왕의 딸 페드라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여 뒤늦은 행복을 맛봅니다.

그런데 페드라는 왕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히폴리투스를 보고 영혼을 빼앗길 정도의 사랑을 느끼죠. 하지만 계모의 사랑이 인륜을 저버리는 것임을 알고 있는 히폴리투스는 페드라의 이 같은 유혹을 단번에 거절합니다. 욕염(欲炎)에 사로잡힌 페드라는 히폴리투스에게 저주를 퍼붓고 결국 히폴리투스는 불의의 마차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홀로된 어미가 생계와 꿈이,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연극에 몰입해 있는 동안에 현실에 방치된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의 황망함과 허무함...


등속의 감정들이 잘 교직되었어야 할 작품이었습니다만, 희곡도 연출도 무대와 연기자들도 열심히는 했는데 잘 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광야 Wilderness 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작품이라면 주제와 서사는 좀 더 뾰족하게 정의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회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사고를 이렇게 거칠고 조잡하게 소비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독으로 피곤한 상태라 몰입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공감이 덜 되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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