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살해 및 사체 훼손, 두 딸 영유아 살해 혐의를 받는 하서린이 변호사에게 하는 말입니다.
폭력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와 자신을 위로하다 강간에 이른 의붓오빠를 피해 집에서 나와 겨우 이룬 가정을 위협하는 알콜중독자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서린은 술에 취해 골아떨어진 남편을 목 졸라 죽입니다.
여성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에게 오래된 레퍼토리, 결손가정 출신이거나 가난한 가정 출신들이 유범자가 된다 혹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계층 혹은 계급의 문제로 쉽게 배경적 당위를 얼버무라고, "한편으로 가해자인 우리 사회"가 "아버지와 오빠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인 피고를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변호사의 물음이 던져집니다.
굳이 여성극일 필요가 없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치를 존중하는 우리 사회는 설사 누가 보더라도 돌에 맞아죽을 짓을 한 사람에게도,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사적 보복'을 금지할 정도의 성숙도와 세련을 갖춘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가해자의 폭력이나 피해자의 수동적 경향과 파멸적이고 비극적인 결론 모두를 가난한 자들, 결손가정이나 직업군인 가족 등 무능과 천박을 전담해야 할 둣한 하층민들 내부의 루프를 맴도는 무한회귀의 계급적 이해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접근일까요.
"당신 바보에요? 자존심도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당하고만 살았어요?"를 외치는 변호인은 법대를 나와 대학교수 남편과 살더군요.
정말로 가난이 문제라면 질문은 성이 아니라 이에 대한 해법에 대한 물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전진하는 사회를 위한 다양한 편견의 하나를 또 접했습니다. 김영경 배우의 열연에는 깊은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