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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Apr 17. 2024

그 게 나라서 다행이다.

나에게 '병자가 된다는 것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암에 걸렸다는 것을 확정하고 난 뒤 올라왔던 내 처음 마음은 '이 고통을 내가 겪어서 다행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3남 4녀 중 막내다. 언니 오빠들은 모두 작게는 2살에서 많게는 18살 차이가 난다. 내 나이도 마흔일곱이니 모두 다 회갑을 지나거나 향하는 나이다.  그들에게 아직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발견만 안 되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게 감사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이 고통을 겪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가족력이 중요한 암 발현 비율 중에 내가 차지해 버린 비율만큼만 이라도 가능성을 낮춰주고 싶다.  


아이는 다르다. 나에게 한 명이라, 내 유전자를 받을 비율이 50%나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가 아파서 그 아이의 액땜을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를 생각한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 한 켠 새로운 힘이 솟는다.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알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련다.  이 고통을 내가 겪음으로 파동 될 우주의 연결을 생각하련다. 아니 믿고 싶다.


오늘은 1차 항암 치료를 받고 왔다.

복수가 찼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시작된 전원이 4일 만에, 처음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시작버튼은 눌러졌다.


4일이라는 날짜를 헤아려보고, 몇 번을 다시 세워봤다. 4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작아도 일주일은 지났을 것 같은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파고를 겪었다.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 순간부터, 암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치료에 집중할 수 있기까지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여러 실타래들이 얽혀 풀어지지 않게 된 실뭉치를 마주 하는 느낌이었다.  보기에는 답이 정해졌지만, 내 몸과 마음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러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보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냥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고 힘이 드는지, 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지 그저 그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무서웠다.  그것이 내가 암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른 척하려 했던 것과 치료를 포기하고 싶어 했던 마음의 키를 붙들고 있던 실체였다.


나는 무섭다. 지금도 통증이 무섭다.  죽음 그 자체가 무섭기보다는, 죽어가는 고통을 견디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내 기억에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병자였다.    언제나 집에 누워계시거나, 먹은 것을 토하시거나, 각혈을 하거나, 숨이 가빠지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야 뵐 수 있었던 분이셨다.


20년 넘게 병자가 살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벌'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불길에 온몸이 타 들어가는 데도 나올 수 없는 사람이  나에게는 '병자'였다.


그런 병자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겪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란 말인가.


다행히 난 나의 무서움의 실체를 알았고,  이전 경험에서 짜인 각본대로 현재의 상황과 동 떨어진 파국적인 상황을 예견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와 다르고, 의료환경도 다르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그래, 이제 다시 어린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처럼, 나도 병자의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거다.


우리에겐 어차피 한 번뿐인 생,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모두 다 같다.  잘 살아가면 그뿐인 것을. 그렇지 않은가?


240413_J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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