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의 어두운 마음_1부 임신기
<양육자의 어두운 마음>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임신, 출산, 초기양육기까지 양육자가 겪는 여러 어두운 마음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1장. 기쁨보다 먼저 오는 불안
그 날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처럼 밥상 머리에서 헛구역질을 하진 않았지만 목구멍에서 불편감이 느껴져 자꾸 침을 삼키게 되었다. 무엇보다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소에 나는 어떤 일이든 별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타입이기에 이런 상태가 더욱 낯설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임신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나서 나에게 그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임신을 한번도 해본적 없으면서, 또 전형적인 증상도 없는데 불현듯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던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보. 나, 임신한 것 같아.”
“왜? 속이 안좋아? 토할 것 같아?”
“아니 그렇진 않은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그냥 느낌이 들 뿐이라는 거야? 다른 건 없어?”
“없어. 어차피 나는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서 임신테스트기 말고는 달리 알 수가 없겠어.”
남편은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지었다.
“그래, 사다줄게.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당신이 무슨 느낌인지는 알 수 없지, 뭐.”
남편이 나가고 나는 빈 집에 홀로 남았다. 갑자기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차가워진 두 손을 쥐어 짜며 아랫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가슴 두근거림이 더 크게 들려왔다. 또 다시, 불안이었다.
스물 여섯살에 결혼한 후 2년 동안 나는 잠시도 쉴 틈 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낮에는 기존에 다니던 박물관에서 일하는 한편, 야간에는 심리치료 대학원에 갔다. 전공을 바꾸어 진학했기에 수업을 간신히 따라가려면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했다. 또한 주말에는 병원과 센터로 임상 실습을 다녔다. 수 조각으로 쪼개어진 하루를 잇느라 종종거리며 살아온 나날이었다. 남편을 기다리며 빈 집에 앉아있는 동안 시간마저 멈춘듯했다. 마치 질주하던 나의 삶에 갑작스럽게 ‘일단 정지하시오’ 표지판이 나타난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여러 회사 걸로 세 개 사왔어.”
남편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남편의 얼굴은 살짝 붉었고 숨이 가빴다. 임신테스트기 사러 다녀오면서 남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중이었고 우리는 이 시기를 생활비를 아껴가며 버티고 있었다. 이때 만약 아기가 태어난다면 남편이 감당해야하는 경제적인 부담이 커질 것이다. 그의 삶에는 ‘지금부터는 전속력으로 달리시오’라는 표지판이 나타났을지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때?”
나는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늘 차분한 남편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임신이든 아니든 다 괜찮지. 일단 해 봐.”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기다리는 3분 동안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이란 머릿 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말한다. 임신 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경우와, 반대로 임신을 결코 원하지 않는 경우에 머릿 속에 드는 생각은 매우 다를 것이다.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제발 이번 달에는 임신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제발 임신만은 안 돼’ 하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럼 내 경우는 어땠느냐면, 임신에 대한 생각을 평소에 진지하게 하지 않았다. 아직 나는 진로를 탐색하고 능력을 개발하는 과정에 더 몰두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풍경에서 진로라는 과업이 가장 가까이에 보였다. 주변에 자녀 계획에 대해 묻거나 재촉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임신에 대한 어떠한 생각이 정해지지 않은채로, 그래서 어느쪽으로 기도해야하는지도 모른채로 내 머릿 속은 어정쩡한 상태였다. 임신을 하면 지금의 안정된 삶을 모두 뒤엎고 리모델링해야한다는 걱정이 드는 한편,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은 여러 방향으로 어지럽게 전개되었다.
‘가만있자, 만약에 임신이 아니라면, 아니 내가 임신할 능력이 없는거라면 어쩌지? 내가 내 삶에서 아기를 원하는 건 확실한가?’
이렇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기다리는 감정은 어떨지 상상해보자. 감정은 몸에서 반응하는 감각을 말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눌리는 듯한 느낌, 숨이 가빠오고 어깨가 긴장되는 느낌, 메스꺼움, 식은 땀이 나고 손발이 차가워짐. 전체적으로 몸이 긴장되고 대비하는 상태에 놓인다.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 모두 동일하게 이 감각을 느낀다. 바로 불안이다. 나 역시 불안을 느꼈다. 몸에서 경보음이 삐뽀삐뽀 울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