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보다 먼저 오는 불안(2)

양육자의 어두운 마음_1부 임신기

by 마음놀

<양육자의 어두운 마음>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임신, 출산, 초기양육기까지 양육자가 겪는 여러 어두운 마음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https://brunch.co.kr/@maumnol/17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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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순간 달려가던 생각들이 멈추고 잠시 멍해졌다. 나는 남편에게 뛰어가 임신테스트기를 내밀며 외쳤다.


“이것 봐, 임신이야. 내가 맞았지?”

남편은 활짝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 쉬었다. 뒤이어 자부심과 승리감이 솟아났다.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 여자라는 안심도 되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소식에 대해 기쁨을 나눈 후 이어서 한참동안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아기는 우리가 학위를 마치고 일자리를 구한 후 안정된 환경에서 태어날 터였다. 그 과정에서 걱정할만한 요인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더 이완되었다.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 무척 기대되고 설렜다.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통해 태어날 거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모든것이 괜찮으니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껏 기뻐하면 되겠다.


그런데 몇분 지나지 않아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 발이 차가워지고 긴장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불안이었다. 이제 불안할 일은 없는데 왜 또 불안해졌지? 우리는 아기를 키울 능력이 있고, 임신을 반갑게 생각하는데, 불안은 그러한 나의 생각과 불일치했다. 몸 전체가 불협화음을 내는 것처럼 불쾌했다. 나는 내 상황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기뻐해야하는데 왜 나는 속이 메스껍고 긴장이 되는 거지? 마치 임신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아니, 혹시 내가 사실은 임신을 원하지 않나? 그러면 뱃 속의 아기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 자,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나는 임신이 반갑다. 그리고 엄마가 되는 것이 기쁘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때 불안하거나 걱정할 일은 없다. 알겠지? 그러니까 그만 불안해하자!’


‘그만 불안해하자!’ 하고 씩씩하게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불안은 나에게 계속 머물렀다. 불안을 느끼는 것이 부적절한 것 같고 불쾌하기 때문에 없애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기도 했다.


‘나는 임신을 기뻐하는 산모야. 내 남편도 마찬가지야. 네 자리는 여기 없으니 꺼지라고’

이렇게 윽박지르면 불안은 ‘네네, 알겠습니다’ 떠나는 시늉을 하나가 어느새 불청객처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또 저예요. 불안입니다, 헤헤’


도대체 임신이란 인간에게 어떤 사건이기에 마치 미리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불안이 발생하는 것일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인간의 역사 전체로 봤을 때 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과 동일한 몸을 가지고 있다. 즉, 임신 소식이 축하보다는 위험신호로 먼저 처리되는 오래된 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포유류 암컷의 입장에서 임신이란 상당히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이는 사건이다.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혼자 쓰던 몸이 다른 사람에게 장기간 점유되어 나누어 써야 한다. 내 마음대로 몸을 사용하는 자율성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가만히 숨만 쉰다 하더라도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그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긴장이 임신기간 내내 지속된다. 그 균형을 잃으면 둘 중 한 사람, 혹은 둘 다 생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체중이 증가하면서 이동이 느려진다. 도망, 숨기, 싸우기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이에 따라 어떤 상황을 위험으로 간주하는 예민성이 상승한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통증, 출혈, 합병증 가능성은 늘 있고 사망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취약해진 엄마는 더 많은 음식과 도움, 안정성 보장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남편의 보살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포유류 수컷은 짝짓기까지만 함께한 후 떠난다. 호랑이, 표범 등은 출산 후 영역 밖으로 이탈하고 사슴과 영양 등은 번식기 이후 무리가 분리된다. 집단에 함께 머무는 침팬지같은 경우에도 수컷이 특정 새끼에 대한 직접 양육은 없다. 남편이 임신한 아내를 보살필지 떠날지는 선택의 영역으로 이 또한 엄마의 불안 요소이다. 보살핌과 음식, 안전한 거처와 같은 자원의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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