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의 어두운 마음_1부 임신기
<양육자의 어두운 마음>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임신, 출산, 초기양육기까지 양육자가 겪는 여러 어두운 마음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https://brunch.co.kr/@maumnol/17 1편에서 이어집니다.
포유류 임신은 기쁨과 축복이기 이전에 자신의 생존과 운명이 걸린 커다란 사건이다. 더 이상 우리가 수렵채집인이 아니며, 지금은 현대 의학이 발달한 문명사회라는 말을 아무리 귀에다가 대고 말해준다고 해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깨닫는다고 해도 여전히 몸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생각이 아니라 몸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발생하는 이유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불안은 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 상황에 대해 낙천적으로 여기기보다 위험 가능성에 대해 과민하게 치우쳐 생각하는 것이다. 또 자신과 태아를 위한 음식과 혜택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공격성을 높인다. 새로운 변화를 회피하고 보수적으로 선택하여 안정에 집착하는 행동을 유발한다.
물론 불안은 비용이 크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공과금, 보험금처럼 불안도 뭔가 나에게 즉각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감정이 아니고 오히려 에너지를 잡아먹으며 불쾌하기만 하다. 그러니 불안이 없어지면 편안할 것 같은가? 동물들에게 불안은 생존을 높이는 필수적인 감정이다. 불안이 없어서 편안했던 종들은 불안이 필요해진 순간 사라졌다.
멸종된 도도새를 떠올려보자. 큰 육식동물이 없는 외딴섬에 살던 도도새는 숨거나 도망치는 위험 대처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고 땅에 떨어진 열매를 먹으며 어려움 없이 번식하였다. 17세기 후반 인간이라는 위험이 그 섬에 들어왔다. 경계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는 도도새를 인간은 손쉽게 사냥하였다. 또한 인간과 함께 섬에 들어온 쥐, 돼지같은 동물들은 도도새의 알을 먹어치웠다. 포식자에 대한 공포가 없었기에 적절한 대처행동을 하지 못한 도도새는 천적을 만난지 80년만에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동물들 입장에서 이 불안은 자연스럽고 유용한 감정이다. 우리는 이 감정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그로 인해 죄책감이나 수치심같은 2차 감정을 발생시킨다.
불안은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지 임신을 거부하는 마음이 아님에도 나는 그렇게 해석하였다. 그 해석으로 인해 나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심리학에서는 처음에 느낀 감정을 1차감정이라고 부르고, 그 감정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2차 감정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 1차 감정인 불안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 것이었다. 대개 1차감정의 고통보다 2차 감정의 고통이 더 심하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다시 왜곡된 생각들을 일으켰다. 예를 들면 그 생각은 내가 엄마 자격이 없거나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마치 눈 깜짝할 새에 퍼져 나가는 가짜 뉴스처럼 말이다.
"당신은 인간 포유류 암컷입니다. 임신은 당신의 종족에 이득이 되는 사건입니다만, 당신이라는 개체에는 생존이 위협이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임신 출산은 훨씬 위험합니다. 여전히 지구의 저소득 지역에서는 여성이 사망하는 이유 중 17퍼센트가 출산이거든요. 그래서 당신의 심장이 빨리 뛰고 손 발이 차가워지고 목 뒤가 뻣뻣한 거예요. 당신은 이 임신과 출산 중에 죽게 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라고 누가 말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인간이 얼마 전까지 다른 동물과 다름없이 살았으며, 여전히 우리가 동물이라는 것을 잊은 나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