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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Aug 13. 2021

22호와 완벽주의자들에게 바치는 작은 시

[영화] 소울 Soul

우리 집 IP 티비에 드디어 소울이 들어왔다. 아.. 영화관 간 적이 언제더라... 눈물 좀 먼저 닦고...


이미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은 터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예상보다 영화는 이모저모 생각할 지점이 많은, 마냥 즐겁거나 감동적인 영화로 말할 수는 없는, 고농축 고단백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아래부터는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삶의 불꽃은 우연한 사고처럼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는 '삶의 불꽃'이다. 삶의 불꽃을 찾아야만 지구행 티켓을 완성하는 귀요미 영혼들은 일종의 영혼판 잡월드에서 멘토와 함께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다. 몇백 년을 사는 동안 온갖 네임드 멘토를 거쳤으나 도무지 삶의 불꽃을 찾아내지 못한 22호는 '우연히' 지구에 내려와 '우연히' 불꽃을 찾아낸다.


내겐 여기서의 키워드가 '우연히' 그리고 '지구'였다. 마음을 뜨겁게 할 무언가를 찾아 우린 헤맨다. 그것은 좋은 멘토를 만나서 얻어지기도 하고 나와 맞는 어떤 경험을 통해 습득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아주 우연히 만난다. 우연히 내 머리 위로 떨어진 벚꽃잎처럼.


그리고 우연히 떨어지는 벚꽃잎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그저 열심히 길을 걸어야 한다. 생각 속에선, 방 안에선 만나지 못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 같은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 같은 세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갈 때에야 비로소 삶의 불꽃은 우리를 향해 살랑, 내려앉을 준비를 시작한다.



목적이 방향이라면 불꽃은 동력


이 영화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22호와 조의 주된 착각은, 목적과 불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를 이끄는 강력한 삶의 목적을 찾으면 우리는 앞으로 지치지 않고 나아갈 거라 믿곤 한다. 그래서 지치는 스스로를 보며, 거꾸로, 이게 내 목적이 아닌가,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삶의 목적이 삶의 방향이라면 삶의 불꽃은 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 동력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계속 향할 때 그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말고 확실한 종착지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방향은 수시로 수정될 수 있고 동력은 매 순간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매일 밥 먹고 그것도 모자라 영양제 먹듯.


중요한 건 목적 자체가 동력을 제공하지 않는단 것이다. 목적이 뚜렷해지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건 사실 어쩌면 우리의 착각이고, 깊은 바람일 것이다. 동력은  습관이고 일상이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리추얼을 하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취미를 하고, 상담을 받는다. 목적이 모든 걸 해결할 거라는, 목적 만능주의는 우리를 또 다른 완벽주의 틀에 가둔다.





You are not enough.  
So you are enough to live.
 

영화에서 22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I am not enough."이다. 몇백 년 멘토들을 갈아치우며 지구행을 거부한 22호. 사실 그는 계속 자신이 지구에 살기엔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사실 저 대사는, 상담실에서 많이 듣는 대사다. 많은 삶의 다음 관문 앞에서  그 관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수많은 완벽주의자 내담자들의 마음 안에 있는 한마디 말.


난 취업 준비를 하기엔.

난 그 일을 하기엔.

난 그 학교에 가기엔.

난 결혼을 하기엔. 아이를 낳기엔.

난 혼자서 살아가기엔.


충분치 않아요.

다른 무엇도 아닌, 날로 견고 해지는 '충분치 않아' 감옥이 그들을 가둔다.


완벽주의의 뒷면에는 언제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마 22호도 그 누구보다 지구에서 잘 살고 싶었을 거다. 문제는 그 '잘한다'의 기준이다. 이들의 잘한다, 기준은 대부분 그들의 머릿속에 있어서 외부적으로 봤을 때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뤄도 대부분 머릿속 기준에는 차지 않는다. 당연하다. 머릿속에 있는 게 왜 머릿속에 있을까. 현실에 없으니까 머릿속에 있는 거다.


애초에 잡을 수 없는 목표에 도무지 도달하지 못하는 절망은 자신에게는 자기 비하로, 세상과 타인에게는 시니컬함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들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 누구보다 잘 살고 싶고 충만하고 싶은 그 마음이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기란 참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조가 좋은 멘토로 거듭난 순간은, 완벽하지 않지만 갈 수 있을 데까지 같이 간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22호를 지구로 다시 보내기로 결정한 후 망설이는 22호를 위해 조는 함께 날아가기로 한다. "하지만 끝까지 같이 갈 수 없는걸요"라고 말하며 벌써부터 완벽하지 않은 완성을 걱정하는 22호에게, "알고 있어.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갈게"라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조. 아이들과 22호의 멘토로서의 조 또한 완벽주의를 벗고 한층 성장하는 장면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삶도, 괜찮아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특히 우리가 맺는 많은 관계들이 우리가 그리던 '완벽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끝난다. 그건 우리의 어떤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냥 인생이기 때문이다.


때론 서로의 준비 안 됨으로, 때론 환경의 제약으로, 때론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머릿속에 있는 우리의 완벽한 순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고 사랑을 한다. 그것이 찰나의 스침으로 끝나도, 원치 않은 곳까지 나를 데리고 가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만난다. 삶을 계속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불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삶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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