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비밀정원,오마이걸
노동요로 유튜브 아이돌 노래 플레이 리스트를 끼고 살다가 오마이걸의 노래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지난 <퀸덤> 때부터 눈 여겨보긴 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노래가 매력적이다.
가장 좋아하게 된 노래가 '비밀정원'인데, 멜로디는 물론이고 가사가 정말 좋다. 나는 노래에서 가사를 자세히 듣는 편인데, 근래 들어 드물게 가사가 끝까지 성의 있는 아이돌 노래다.
난 아직도 긴 꿈을 꾸고 있어
그 어떤 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침 햇살이 날 두드리며 Hello
매일 머물렀다 가는데 모르지
처음으로 너에게만 보여줄게 나를 따라
Come with me bae
손을 잡아 You and me
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가 있어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만나게 될 걸
이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나의 비밀정원
너무 단순해 그 사람들은 말야
눈으로 보는 것만 믿으려 하는 걸
빗방울은 날 다독이며 잠시
내게 또 힘을 주곤 해 다정히
오늘 하루 한 사람만 초대할게 나를 따라
Come with me bae
상상해봐 You and me
아마 언젠가 말야 이 꿈들이 현실이 되면
함께 나눈 순간들을 이 가능성들을
꼭 다시 기억해 줘
네 안에 열렸던 문틈으로 본 적이 있어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만나게 될 걸
그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너의 비밀정원
무럭무럭 어서어서 자라나 줘 Beautiful
<비밀정원> 가사를 EBS 수능 국어처럼
분석해보자
그렇다. 나는 소싯적 빼곡하게 필기된 단권화된 교재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정리 변태였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비밀정원 가사를 보니 한 단락 한 단락이 명문이라 결국 메모장, 아 아니 브런치를 켠다.
Thanks to 오마이걸, and 작사가 서지음 씨.
내담자는 자신의 정원으로 상담자를 초대한다
난 아직도 긴 꿈을 꾸고 있어
그 어떤 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침 햇살이 날 두드리며 Hello
매일 머물렀다 가는데 모르지
처음으로 너에게만 보여줄게 나를 따라
Come with me bae
손을 잡아 You and me
혼자서만 긴 꿈을 꾸는데 익숙한 내담자는 자신의 꿈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해받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그 어떤 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사실 내담자에게는 Hello 인사해 주며 내담자를 두드리기도 하고 옆에 머물렀다 가기도 했던 소중한 존재들이 있었지만, 사실 심리적 고통에 시야가 좁아진 (터널 비전 현상이라고 한다) 내담자는 그걸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인식하지 못했지만 차곡차곡 쌓인 그 햇살 같은 존재들의 사랑에 힘입어 내담자가 상담실에 왔고, 상담자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담자가 아닌 내담자가 따라오라며 손을 내미는 것이다.
상담에서 상담자를 '가이드'라고 표현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이드는 고객이 가려고 할 때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다. 내담자가 기꺼이 손을 내밀면 상담자는 덥썩 그 손을 잡는다.
너무 단순해 그 사람들은 말야
눈으로 보는 것만 믿으려 하는 걸
빗방울은 날 다독이며 잠시
내게 또 힘을 주곤 해 다정히
오늘 하루 한 사람만 초대할게
내담자는 분명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려 시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피상적인 시선에 상처 받고 다시 자신의 내면세계로 침잠해버린다. 그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담자의 의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혹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취나 스펙들에만 가치를 둔다. 내담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오죽하면 차가운 빗방울마저 다정한 위로로 느껴진다. 그러던 내담자가 자신의 세계에 상담자를 초대한 것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비밀정원을 이미 알고 있다
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가 있어
아직은 별 거 아닌 풍경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만나게 될 걸
이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나의 비밀정원
내담자들은 한참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선 대부분 이렇게 끝맺는다. "근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난 얘기한다. 답은 이미 가지고 계신다고. 하지만 찾는 법을 모르시는 거라서, 제가 상담에서 함께 찾도록 돕겠다고.
정원은 사람들이 드나든 지 너무 오래돼 입구부터 험난한 경우가 많다. 문은 기름칠이 안 되어 삐걱거리고, 제대로 안 닫히거나 안 열린다. 이리저리 가시덤불에 뒤덮여있어 사람들이 들어오려다 찔리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내담자는 이 문을 열어야 할지 아닐지 헷갈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온 경우가 많다. 이때 상담자는 정원사가 되어 문 주변 덤불들을 정리하고, 수리기사가 되어 문도 수리하고 정비한다. 단, 이 모든 행위는 내담자와의 철저한 상의를 통해, 내담자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게 좋을 것 같다는 상담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결정은 내담자에게 다시 상처가 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담자는 말한다. 너무나 별게 없는 풍경이라고. 하지만 상담자는 힘주어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함께 물 주고 햇빛 쬐주고 바람 막아주며 가꿔보자고. 그러면 당신만의 비밀정원을 알게 될 거라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놓치지 않았을 때야만 상담자는 정원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상담은 끝나면 사라지는 불꽃놀이가 아니다
아마 언젠가 말야 이 꿈들이 현실이 되면
함께 나눈 순간들을 이 가능성들을
꼭 다시 기억해 줘
상담의 제한된 회기나 그 밖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때로는 내담자가 대안을 발견하고 연습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상담이 끝나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는 내담자들에게 상담이 끝난 뒤에 혼자서라도 꼭 해야 하는 것들을 다짐시켜주곤 한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만남은 화려했다가 사라지는 '불꽃놀이'가 아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아니 지날수록 더 풍성해지는 '정원'이다. 상담이 끝난 후에도 내담자는 계속 자신만의 상담을 이어갈 것이고, 반드시 그 꿈들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때 혹시 가능하다면 함께 만난 순간들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물론 마음만 그렇고 말로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좌절의 순간이 되어도 자신의 가능성들을 다시 기억해달라고 당부한다. 거센 폭풍우나 폭설이 오면 애써 가꿔온 정원이 망가질 수 있다. 다 갈아엎어버리거나 방치해버리고 싶을 테지만, 그래도 정원 그 자체는 아직 남아있음을 기억해 주길 기도한다.
'나'를 사랑하면 비로소 보이는 '너'의 비밀정원
네 안에 열렸던 문틈으로 본 적이 있어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만나게 될 걸
그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너의 비밀정원
이 노래 가사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앞선 가사와 거의 내용이 비슷한데 주어가 '나'에서 '너'로 바뀌었다.
충분히 사랑받고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법도 배운 내담자들은 비로소 너의 비밀정원을 보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진심으로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하는 공감이나 배려는 가짜이거나 모래성 같다.
난 상담실에서 단 한 명의 내담자를 만나지만, 단 한 명만 만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가능성을 경험한 내담자는 분명히 사랑의 꽃을 피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상담은 이거다,라고 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상담은, 사랑을 받고 또 줄 줄 알게 되는 것, 이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게 되는 나의, 그리고 너의 비밀정원이 모두에게 풍성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