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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Dec 05. 2022

때론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노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백예린


상담에서 내담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느끼는 어려움과 그로 인한 절망을 가지고 올 때가 많다. 그 어려움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일 때 우리는 무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이것이 장기화되거나 더 심해진다면 우리는 이를 우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일은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누구의 몫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래서 이게 누구의 잘못인지 따져 물을 수 없어 주저앉는 무력한 날들이 늘어간다.


인지행동치료의 third wave 중 하나인 '수용전념치료(ACT)'는 우리에게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어떤 것에 힘을 쓰고 어떤 것에 힘을 빼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 아무의 잘못도 아닌, 하지만 내게는 너무 아픈 그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상담에서 많이 하는 일이고, 그것이 나의 품위를 결정하게 됨도 곧 배우게 된다.


이런 길고 또 모호한 이야기들이 내담자들에게 잘 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종종 소개해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이다.




https://youtu.be/_EfRa_ywkEw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우리에게까지 온 건지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우리 사이에 큰 상처로 자라도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우리 사이에 자주 아픔을 줘도
그건 아마 우리를 더 크게 해 줄 거야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익숙해진 아픈 마음들
자꾸 너와 날 놓아주지 않아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노래 가사에서처럼 불안은 정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우리들 사이를 스며들고, 그 불안이 실체가 있는 공포와 두려움이 되어 우리를 덮친다. 그러면 대체 그 불안이 어디서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렵고 그저 우리 사이에 있는 불안이 나를 어떻게 아프게 하는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실, 불안이 올 때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은 '도망'이다. 숨고 싶어 진다. 그저 문제로부터 멀어지고 싶고, 불안의 근원이 너 혹은 그것이라고 정해버려서 그저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환상에 빠져있고 싶어 진다. 너의 손을 그만 놓고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간은 진화했다.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 험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인간은 무기를 개발하기도 했고 위험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함께'하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거슬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손을 놓지 않겠다는 그 결정은 우리가 지금까지도 불안의 바다에 먹히지 않고 살아가게 한 힘이다.


불안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너에게 보이기란 부끄럽고 또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눈을 맞추어야 한다. 너의 눈동자를 통해서만 내가 모르는 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익숙한 나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용기 있는 내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 덕분이기도 하다.


너는 모르지만, 나는 너를 보고 있어.

나는 네가 모르는 너를 알고 있지.

너는,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우주를 갖고 있어.

그러니 마음껏 이 불안의 바다를 헤엄치렴.

네 손을 잡고 있으니 우린 서로를 잃지 않을 거야.


결국 우리를 살리는 것은,

불안의 바다에 기꺼이 빠져들 수 있는 나의 용기와

그 바다 안에서 끝까지 나를 보고 있는 너의 다정함.

그뿐일 것이다.

인류 최대의 생존 발명품은 바로 이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가끔 삶 앞에서 내가 무기력하게 졌다고 느낄 때 이 노래를 듣곤 한다. 결국은 나를 잃지 않는 용기가, 그런 나를 봐주는 너의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우리의 어려움은 아마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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