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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Sep 25. 2023

내게 바다는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고

1.

바다를 보고 난 후의 일이었다.

바다의  반짝이는 그 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혼란스럽게도 난 바다의 일부인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무엇이 그곳에 있는것만 같았다.

나의 무엇이 나를 애타게 부르는 것만 것만 같았다.


아니, 나를 부른다.

그래, 나를 불렀다.

너무나 부드럽게 너무나 달콤하게 속삭이듯 노래하며 나를 불렀다.

난 눈을 감았다. 귀를 닫았다.

그래도 보였다. 그래도 들렸다.

진공의 상태속에서도 바다는 내 가슴에서 계속 일렁였다.


2

난 지금 바다에 있다.

파도와 폭풍우를 만났다.

배는 파손되었고 힘은 빠졌다.

항구에도 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바다로 출항했다.


바다에 파도가 하얀 포말을 그리며 춤추고 있다.

난 지금 바다의 어디쯤 있을까?

이 질문은 더이상 의미가 없겠다.

난 바다 어딘가에 있다.

난 삶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 내게 바다는 매혹이다.> 크레파스, 수채물감, 종이, 2023-8-27


발기법. 유성인 크레파스는 수채물감에 녹지 않는다. 수채물감에도 형태를 유지하려 할때는 유성매체인 파스텔, 유성매직, 볼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크레파스는 물에 반발하여 자기 형태를 유지한다. 물결이 일으키는 선은 물감의 성질에 반발한다. 매체의 침투와 반발, 파도의 쓸림과 밀림,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은 그 나름의 무늬를 만든다. 이 두가지 대극이 격렬해 질 수록 더욱 선명한 무늬를 만든다.


크레파스로 흰색 선을 긋도 도화지를 흡뻑적셨다. 어떤것은 물 웅덩이가 되고, 어떤것은 담아내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어떻것은 물을 가두지 못해 어디론가 흘러갔다. 파란 물감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면 저마다의 공간에서 색이 번진다. 어떤것은 가두고, 어떤것은 흘러가고, 어떤것은 스며든다. 도화지를 흔들때마다 스며들지 못한 물들은 크레파스 선을 타고 흘러간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미니카가 트랙을 돌듯, 유속이 강한 유스풀을 돌듯 흘러간다. 즐겁다. 바다놀이가. 즐겁다. 바다에서 유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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