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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Nov 12. 2023

아름다운 이별은 가능한가?

애니 오벤든 <햇볕 쬐기>

유튜브 알고리즘이 성시경 가수의 채널을 추천해 주었다. 성시경과 장필순이 <잊지 말기로 해>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노래가사가 내 가슴을 꽉 붙들었다. 


우리의 만남은 이제 끝나지만 그대는 영원히 나의 가슴에 남아
이대로 헤어지지만 우리 사랑을 우리 사랑을 잊지 말기로 해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노랫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토록 잊지 못할 사랑이 있다면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지만 끝내는 사랑은 나약하고 비겁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대로 헤어질 때는 사랑이 식어서 끝나는 것이니 미련이 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났지만 잊지 않는다는 노랫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좀 더 세상을 겪다 보니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과거를 다 잘라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정이 식었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뒤를 돌아보게 하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하면 마음이 계속 아리고 쓰린 이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별이 오게 한 여러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후회하기도 했다. 원치 않는 이별이더라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남녀를 보게 된다. 헤어졌다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저들은 어떻게 이별 후에도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정은 모르지만 저들도 서로 갈등하고 부딪힌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해결이 서로의 애정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는 애정만큼 가능하다. 그러나 애정이 작아진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런 거다. 좋은 것이 그저 좋듯이 싫은 것은 그냥 싫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모두 변하듯 사랑도 변화를 맞이한다. 사랑도 종말을 맞이한다. 계속 새롭게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 끝을 맞이하게 된다.



애니 오벤든 <햇볕 쬐기>, 2015, 캔버스에 오일, 61 X 48 cm (C) CATTO Gallery)



사랑의 끝이 아름다울 리가 없다. 쓰리고 아프다. 안타깝고 애석하다. 그러나 그 슬픔이 다 해지고 나면 남겨진 추억이 모습을 드러낸다. 희미했던 추억은 은은한 목련꽃처럼 드문드문 향을 흘린다. 쓰라린 이별의 겨울이 끝났음을 알린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약하고 병든 나무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만다. 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겨울을 묵묵히 견뎌 냈기 때문이다. 이별 후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은 홀로 있는 시간을 견뎌 낸 사람에게 찾아온다. 지금의 삶을 잘 살아내지 못한 사람은 이별의 아픔에 계속 쓸릴 것이다. 상대를 원망하며 탓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지난 시간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시간 속에 살게 될 수도 있다. 


진정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의 시련을 잘 견디며 봄 맞이 준비를 할 때만 가능하다. 지난 사랑이 소중하다면 그래야 한다. 겨울을 견디는 겨울나무처럼 그래야 한다. 이것이 아름다웠던 시간에 할 수 있는 예의이며 마지막까지 해 줄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기 위해서는 지금을 잘 살아 내야 한다. 이것이 아름다운 이별로 가는 길이다. 


애니 오벤든(1945~)의 나무는 햇볕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나무는 잎이 없다고 해서 허전해하지 않는다. 날씨가 차갑다고 해서 움츠리지 않는다. 나무에게는 햇볕이 비추고 있다. 나무는 온몸을 펴고 태양을 향해 뻗어 있다. 나무 끝이 붉게 상기된 채로 온 힘을 다해 빛을 맞이하고 있다. 나무의 이 간절함은 다시 봄을 마주하기 위함이다. 다시 너를 만나기 위해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무의 창백하고 서늘함에 눈이 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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