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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Nov 11. 2023

폐허에서도 살아남으리라

안젤름 키퍼 <지금 집이 없는 사람>,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다시 가을이 왔다. 11월이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강한 바람에 떨어져 간 마른 낙엽이 거리를 헤매는 것을 보았다. 그 낙엽을 보니 안젤름 키퍼의 가을 그림이 떠올랐다.


2022년 9월 서울 용산구에 있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안에는 진한 유화 냄새로 가득 찼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에 사용된 기름 냄새 때문이었다. 갤러리 안에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는 동일한 제목을 가진 13점의 대형 회화와 설치작품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작품은 유화의 냄새처럼 향이 강하고 찐득한 느낌이었다. 회화의 질감은 강하고 거칠었다. 물감뿐 아니라 지푸라기와 나뭇잎 등 자연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감정을 강하게 요동치게 했다. 마치 마음을 긁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단풍이 예쁘게 물드는 10월의 가을이 아닌, 낙엽이 정처 없이 흐트러지는 11월의 가을은 마음을 불안하게 어지럽힌다. 마치 폐허를 연상시킨다.


좁은 갤러리 안에서 가을의 쓸쓸함이 나를 압박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갤러리 안을 쉬이 떠날 수가 없다. 뭔가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었다. 아니 내 마음이 이 그림을 붙들고 싶었다. 삶의 한 장면과 닮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얼마간의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에 임박한 노년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아니 상상하기가 두렵다. 혈기왕성했던 여름날의 삶이 어떻게 가을의 결실을 맺고, 어떻게 죽음으로 가는지 지켜보았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서는 '노년은 대학살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문장은 노년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구도 노년을 위로할 수도 구원도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아버지가 노년에 이르러 대학살에 이른 것을 보았다. 아버지도 나도 무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노년을 무력함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나는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늙어 가야 할까?





작품의 제목인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는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에 나온 시의 절이다.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이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아주시고
들에는 많은 바람을 푸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가을날, 송영택 번역


안젤름 키퍼는 자신의 회회적 사고에 있어 시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안젤름 키퍼가 릴케의 시 <가을날>에서 받은 영감은 무엇일까?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릴케의 시를 읽어 보았다. 이 시의 시간은 단풍이 물드는 10월이 아니다.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11월이다. 11월의 낙엽은 바짝 마른 채 길을 뒹굴러 다닌다. 이 시의 첫인상은 가을의 처량함이었다. 11월 가을날이라는 시점과 가로수 길을 헤매는 낙엽에게 황량함이 느껴졌다. 여러 번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 시는 기도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화자는 인생이라는 가을 앞에 시인 자신보다 큰 존재를 부른다. 그리고 이제 긴 여름이 끝나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말한다. 해 대신 그림자를 드리우고 많은 바람을 내어 달라고 말한다. 마지막 과실이 익기 위해 이틀만의 시간을 더 달라고 한다. 마지막 단맛을 더 내기 위해 잠깐의 해를 더 내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화자는 더는 집을 짓지 않는다. 더는 자신의 울타리를 키우지 않는다. 더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가을의 이 사람은 고독하게 남은 시간을 보낸다. 대신 잠자지 않고, 읽으며, 누군가를 향한 긴 편지를 남긴다. 그러나 많은 바람 때문에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헤맨다. 시의 화자는 강한 바람 겨울이라는 다음 삶을 위해 나뭇잎을 떨구기 위한 것임을 안다. 열매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필요한 바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화자는 '주(신, 자연)'에게 많은 바람을 불게 해 달라고 하며 기꺼이 가을의 끝을 맞이한다.



안젤름 키퍼의 그림에는 유화 물감과 함께 납으로 칠해진 낙엽, 지푸라기가 뒤엉켜 구르고 있다. 납은 연금술의 재료로 쓰인 물질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금술사들은 납을 금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1875-1961)은 이 황당무계해 보이는 연금술을 심리적으로 해석했다. 연금술사들은 자연의 재료를 통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금으로 변화시키려고 시도한다. 금술사들은 이 실험의 과정에 자신의 무의식을 투사하게 된다고 한다. 연금술은 단순히 납을 금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납에서 금으로 변화한다는 상징성은 자아의 변형을 의미한다. 기존의 자아는 고유성을 지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창조적인 자기(Self)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의 변형 그 자체보다 정신의 변형을 의미한다.


안젤흠 키퍼 회화에이러한 연금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연금술은 모호하고 혼동스럽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신의 변형을 가져온다. 모호하고 혼동스럽고 불안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정신은 새롭게 창조된다.  




시 가을을 맞이한 지금 이 그림이 다시 보고 싶어 졌다. 저장된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보았다. 릴케의 시와 이 그림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지난 시간 동안 내게 많은 일이 있었다. 몇십 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알지 못해 덮어 두었던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과거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게 될까?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까? 얼마나 많은 깨우침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늙음이 긍정되었다. 내년이면 몇 살인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데 라며 생각했던 조급함이 잦아들게 되었다.


릴케의 시에서는 말한다. 진한 포도주를 내기 위해 이틀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잠자는 시간을 아끼며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이다. 이것은 지난여름을 잘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도 그런 시간을 살아내기를 기도한다. 붉은 포도를 영글게 하기 위해 이 여름을 잘 살아내기를, 그리고 남은 며칠을 읽고 쓰며 애쓰기를, 그리고 그것을 다 한 후 바람에 날아갈 수 있기를 말이다.  


'예술은 폐허에서도 살아남으리라'라고 말했던 키퍼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삶 역시 예술이 된다면 폐허에서도 살아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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