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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Dec 26. 2023

가시덤불 속에 '너'가 있다.

메리 올리버 < 긴 검은 나뭇가지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숲 속의 잠자는 공주>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공주가 태어났다. 왕은 축하파티를 열고 열두 명의 마법사를 초대했다. 초대된 마법사들은 공주에게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 등 축복을 기원하는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13번째 마법사가 나타나 공주에게 저주를 건다. 공주가 15살이 되는 생일날 물레에 찔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였다.     


왕은 초대받은 마법사들에게 공주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보지만 마법사들은 이미 축복에 모든 마법을 써버려 공주를 도울 수 없었다. 이에 아직 마법을 쓰지 않은 12번째 마법사가 나타나 말한다. 자신이 저주를 막을 수는 없지만 공주에게 걸린 마법이 풀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다고 했다. 공주가 죽는 것 대신 100년 동안 잠에 빠져 있다가 사랑하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게 된다는 마법을 걸게 된다.      


왕은 13번째 마법사의 저주를 풀기 위해 온 나라에 있는 물레를 찾아 모두 불태운다. 그리고 공주가 나돌아 다니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그러나 공주는 어느 날 성 탑에서 노파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광경에 매혹되어 다가가다가 물레 바늘에 찔리게 된다. 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공주는 숲 속에 잠이 든다. 그리고 공주가 잠든 숲도 함께 잠에 빠져든다. 12번째 마법사가 100년 후 깨어날 공주가 외롭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을 잠재웠으며 다른 사람이 침입하여 그들을 건들지 못하도록 성 전체를 가시덤불로 보호해 둔다.     


100년 후 성을 지나치던 왕자가 이를 수상히 여긴다. 왕자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가시덤불을 칼로 베지만 가시덤불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난다. 12번째 마법사가 왕자에게 자신의 칼을 선물로 주고 왕자를 이를 이용하여 공주를 찾아간다. 왕자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를 하게 되고 공주는 깨어난다.




<숲 속의 잠자는 공주>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세상을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타자는 너를 소유하려 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가족뿐이라고 했다. 그 가족을 만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왕은 나라에 있는 물레를 모두 치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듯이 내게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세상에 나와 타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물레에 찔렸다.   

  

나는 잠이 들었다. 물레의 바늘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사랑의 슬픔에 압도되었다. 세상은 역시 무섭고 고약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잠에 빠져버렸다. 난 고통을 피해 잠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만의 성에 들어갔다. 마법사는 나를 위해 가시덤불을 덮여 주었다. 때론 유용했지만 때로는 고독했다. 그 가시덤불은 나를 보호하기도 했지만 나를 고립되게 했다.


나는 긴 시간 홀로 발버쳤다. 많은 헛발질도 했다. 도돌이표처럼 같은 문제에 계속 걸려 넘어졌고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용했던 시간 같이 느껴지기도 다.

 

사람들은 공주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난한다. 공주가 잠들기 전에는 아버지가 물레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공주가 잠들고 나서는 마법사와 왕자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한다. 말한다. 공주가 너무 수동적인 것 같다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돌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비난한다. 공주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까?


공주가 잠에서 깰 수 있었던 것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타자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타자가 나타났을 때 알아보는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다. 그 타자와 다시 사랑할 힘을 생성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타자와 만나게 되는 날 긴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내 시행착오의 역사도 '마주치기'위한 과정이었다. 나를 매혹시키는 타자를 만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 기다림에 상처받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찾으려했기 때문이었다.  


호들러 <영원과의 교감>


긴 검은 나뭇가지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 메리 올리버



가시덤불속에 들어가야 '너'를 만날 수 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는 왕자뿐 아니라 등장하지 않는 많은 타자가 있을 것이다. 성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성을 궁금해했을 것이다. 수상하게 여기기도 했을 것이고 신비로워보이 기도 했을 것이다. 성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가시덤불로 뛰어들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덤불 앞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중간에 포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기를 바꿔가며 가시덤불 들어갔다.     

왕자의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긴 검은 나뭇가지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 메리 올리버     

다른 생명체들의 긴 검은 나뭇가지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이른 아침에, 어린 아카시아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꿀이 가득한, 신선한 나뭇결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이 세상이 단지 당신을 위한 여흥일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바닷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바닷물이 당신이 들어올 수 있도록 모든 예의를 다해 갈라지는지 바라보지 않으면서!
마치 당신이 잔디인 것처럼, 잔디에 결코 눕지 않으면서!
당신의 가슴속 검은 응어리 위로 당신의 날개를 펼 때 결코 공중을 향해 뛰어들지 않으면서!

우리가 당신의 슬픔에 찬 목소리에서
당신의 삶에서 뭔가가 빠져 있다는 불평을 듣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군요!

누가 빗장에 손을 뻗지 않고서 문을 열 수 있을까요?
누가 한쪽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닫지 않고서, 그리고 길 위의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들에 집중하지 않고서, 수 마일을 갈 수 있을까요?
건물 외벽에 장식된 돌을 감탄과 함께, 심지어 황홀감과 함께 관찰해보지 않고서,
누가 내면의 방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자,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
사방에 있는 들판들이 당신을 초대하네요.
만약 당신이 지금 있는 그곳에서 떠나 당신의 영혼을 찾기 위해 헤맨다면
누가 신경 쓰고, 누가 당신을 꾸짖을는지요?
그렇다면 빨리 일어나 코트를 걸치고, 당신의 책상에서 떠나세요!

그것 자체로 신비인, 그리고 생명인 동시에 죽음인, 잔디밭의 문 안으로 발을 내딛으세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죽음의 문 안으로 발을 내딛고, 놀라움에 사로잡히세요!

(중략)

들어보세요, 당신은 겨우 숨을 쉬고 있으면서 그것을 삶라고 부르나요?
결국, 영혼은 창문일 뿐,
그 창문을 여는 것은 짧은 잠에서 깨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아니에요.

지난주에야 나는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 야생 장미에게 말했어요.
나를 거절하지 말고,
나의 헌신을 감당해 달라고.

*출처. <전이 담기> 쥬디스 L. 미트라니 지음, 이재훈, 최명균 번역


왕자는 두려움보다 '놀라움'에 사로 잡혔다. 신비로운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공주가 잠든 내면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를 알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고, 잔디를 알기 위해 잔디 위에 눞고, 날개를 펴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들었다. 위험한 일이다. 기존의 자신이 죽어야 새로운 너(바다, 잔디, 하늘)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하지지만 '놀라움'이다. 그 놀라움에 경도될 때 우리는 영혼의 창문을 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를 깨우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파괴되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다가가야 너를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너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갈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랑을 원하므로, 나는 생명을 원하므로.

        

모두가 사랑을 안다고 말하지만 아무나 알 수 없다. 모두가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것은 '긴 검은 가지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할수록 깊숙이, 사랑할수록 용맹하게, 사랑할수록 간절하게.          


호들러 <기뻐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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