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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r 22. 2024

너에게 들어가는 방법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돌과의 대화>

심리평가기법 중 하나로 HTP검사(House-Tree-Person Test)라는 것이 있다. 집-나무-사람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투사된 피험자의 성격, 대인관계, 행동 양식 등을 파악하는 평가법이다. 이중 집 그림 검사에서 ‘문’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으로 상징된다. 문의 크기, 문의 열림의 정도, 문이 달린 위치 등을 살피고 그린이의 의도와 설명을 종합하며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일상의 삶에서 소통을 원할 때 '마음의 문을 열다'라는 식의 관용적 표현을 쓰는 것은 문이 지닌 소통의 상징성을 반영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간절하게 누군가와 소통하길 원했던 적이 있다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 애써본 적이 있다면 알고 싶어 진다. 대체 그 '마음의 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체 어떻게 해야 문이 열리는 것일까?', '대체 이 문은 언제 열리는 것일까?' 혹은 '이 문이 과연 열리기는 하는 것일까?'라며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詩 <돌과의 대화>에서 나와 비슷한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나야 나, 들여보내 줘.
네 속으로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고 너를 마음껏 호흡하고 싶어.”     

돌이 말한다.
“저리 가. 난 꼭 닫혀 있어.
네가 나를 산산조각 낸다 해도
난 열리지 않아.
네가 나를 가루로 만든다 해도
난 너를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시속의 화자인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돌의 문을 두드린다. 간절히 문을 두드린다. '나'는 여러 번의 시도를 하지만 '돌'은 거부를 한다. 이 시를 읽으며 '돌'이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닫았다고 생각했다. '돌'은 왜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일까?  '돌'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 걸까? 혹은 '나'와 '돌' 사이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궁금함이 일었다. 하지만 다음 연에서 '돌'이 '나'를 거절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돌'은 말한다


“들어올 수 없어. 내겐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없어.
함께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어떤 마음으로도 바꿀 순 없어.
설사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해도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소용없지.
넌 들어올 수 없어. 넌 그 마음이 어때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야.
너한테 그 마음의 씨앗에 지나지 않은 상상력만 있을 뿐이지.”

 

'돌'은 '나'에게 '함하겠다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 어떤 혜안과, 어떤 방법으로도, 그 어떤 상상으로도 지금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한다. 이쯤이면 알 것도 같다. '돌'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함께하고 싶지 않은 것이 시 속 화자인 '나'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누군가', 혹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일 수도 있다.  그 단단한 마음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이 단호하다. 


나는 그 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의 마음을 몰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돌'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을 왜 받아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간절한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하겠다는 마음'. 대체 그것이 무엇인데, 대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생겨나는 것인데 '돌'은 '나'에게 계속 없다고만 하는 것일까? 마지막 연에서 돌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나, 들여보내 줘.”     

돌이 말한다.
“나한테 문이 없거든.”


 '돌'에게는 문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 돌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돌'의 마음은 문을 통해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찾는다. 그 세계를 열 문을 찾는다. 그러나 문은 방법인 것이다.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나도 이 시의 '나'처럼 '돌'의 마음에 들어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돌과의 대화>에서 처럼 돌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돌이 문을 열지 못하는 사정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무엇 때문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불편했던 것일까? 내가 편안하게 해 준다면, 내가 즐겁게 해 준다면, 내가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가끔은 그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너에게 문이 없다는 것을 차마 상상하지 못한 채 문에만 집착했다. 방법에 집착했다. 그리고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목표만을 생각했다. 문을 통해서는 켤코 너에게 들어갈 수 없다. 너에게는 그 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내가 찾고 싶었던 문을 너에게서 찾지 않는다. 너에게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때론 풀이되어 너의 곁에서 바스락 거릴 뿐, 때론 빗물이 되어 너를 적실뿐, 때론 빛이 되어 너를 통과할 뿐, 그리고 가끔은 돌이 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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