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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r 24. 2024

단 하루, 그날

그날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날을 살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단 하루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그날 아침 나는 고속터미널역에 내려 병원으로 갔다. 보드라우면서도 모래처럼 까슬한 봄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몇 개의 신호등을 건너갔다. 아버지는 이미 일찍 오셔서 암검사를 위한 채혈을 마치고 암센터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계셨다. 약해진 뼈에 도움이 되는 뼈주사를 맞는 중이셨다. 약제가 한 번에 들어오면 심장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몇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맞아야 한다. 누워만 있기가 답답하니 우리는 링거를 이동식 걸이에 걸고 병원 주변을 걸었다. 이렇게 몇 시간을 헤매면서 진료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따라 병원진료가 많이 지연되었다. 보통 한 시간 지연은 기본이고, 두 시간 까지는 양해가 가능했지만 그날은 세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있다. 아버지 얼굴이 어둡게 변해갔다. "피검사에 이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버지는 혈액 검사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병원에서 진료를 미루고 있는 있다고 생각하셨다. 담당 간호사가 나와서 혈액검사 기계가 잘못되어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고 반복해서 설명해 주었지만 아버지는 믿지 못하셨다. 아버지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난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고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셨다.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아버지는 안심하셨다. 항암수치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오전의 검사 지연은 기계 탓이었음을 담당의가 직접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병원진료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했다. 기운을 차린 아버지는 주변사람들에게 서운한 이야기들을 한층 쏟아 내었다. 그 이야기의 내용 중에는 내게 하는 잔소리도 빠질 수는 없었다. 청력이 약한 아버지는 1:1 대화에서도 연설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식당 안에는 우리 집안의 가족사와 아버지 지인의 이름들로 가득 찼다. 입으로 밥을 먹고, 귀로는 아버지 하소연을 먹고, 눈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갔다. 아버지의 레퍼토리 중 하나는 엄마의 죽음과 관련한 트라우마다. 엄마를 찾아왔던 희귀병이나 병원의 미흡한 조치 같은 외부 요인을 떠나 아버지는 무력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후회와 자책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셨다. 나도 다른 길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실컷 들어드린 후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린 헤어졌다. 지하철 입구로 같이 내려가 아버지는 하행선 나는 상행선 방면으로 갔다. 건너편 플랫폼으로 아버지의 모습이 몇 초간 보였지만 이내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우리 둘의 시야를 갈라놓았다. 이것이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날이다. 특별한 날도 아닌 우리 녀의 일상이다.


이 평범한 날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항암치료를 하는 팔순 넘은 노인과 별 볼 일 없는 중년의 딸이 함께한 보통의 하루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이 참 그립다. 이전에는 참 많은 후회를 했었다. 그날 아버지를 따라 함께 집에 갔어야 했는데, 그날 아버지를 따라가 이부자리를 펴드리며 잠자리를 봐드렸어야 했는데, 가까이 살며 더 많은 시간을 보살펴 드려야 했는데. 하며 내 삶을 사느라 바쁜 이기적인 나를 탓해왔다.


지금 내가 그 시간으로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을 되돌리고 싶다거나,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날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내맡겼으며 나는 무겁지 않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내었다. 아버지는 나를 신뢰했으며 나는 그런 아버지가 곁에 있는것 만으로도 고마웠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날조차 돌이켜보면 소중한 순간이었다. 고통을 감당하고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데서 나오는 야심 어린 마음 때문이다. 사랑은 이런 것이야라는 공식 속에 특정한 모습만이 사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랑의 형식 속에 너와 나를 욱여넣으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를 일방적으로 책임지려 하고 상대의 고통을 떠안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야심 속에 사랑하는 마음은 소외된다.


그동안 놓친 사랑 속에는 나의 야심이 들어 있었다. 상대를 모조리 알고 싶어 하는 야심, 상대의 마음을 소유하고 싶은 야심,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야심말이다. 과거의 일이 그립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 과거가 현재의 내게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은 더없이 충분한 날이었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고 슬픔을 말하고 마음을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었다. 더 잘할 것도, 더 아낄 것도, 더 숨길 것도, 더 바랄 것도 없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날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날을 계속해서 살고 싶다. 내게 있었던 충분한 날들의 기억 속에 잠겨본다. 충분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원망의 가시들을 걷어낼지도 모르겠다. 웅크렸던 마음이 간질거린다.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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