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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pr 03. 2024

너에게로

<피해의식> 너머

피해의식을 넘어서고 싶은가? 예민함에서 섬세함으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을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피해의식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다. 자기-사랑을 줄이고, 타자-사랑을 키워가는 만큼 피해의식을 넘어설 수 있다. 그렇게 ‘나’의 기쁨 너머 의 기쁨으로, 더 나아가 우리의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섬세함이 확장되는 만큼 사랑은 그 영토를 확장한다. 사랑이 확장되는 만큼 피해의식은 그 영토를 잃는다. - 『피해의식』황진규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 실은 사랑받고 싶었다. 나의 사랑의 행위는 구애의 다른 표현이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편지를 쓰고, 음식을 해주고 그이의 주변을 돌보는 행위 속에 실은 나도 사랑받다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애쓰며 사랑하는 그 순간 실은 절절히 사랑받고 싶었다. 이토록 내가 사랑하니 이제 그만 나를 봐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어떤 사랑을 기대했던 것일까? 내 고백에 어떤 응답을 기다렸던 것일까? 조바심 나지 않게 즉시 응답주기를, 부담 갖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해주기를, 심지어는 내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섬세하게 내게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크기로, 내가 원하는 목소리로, 내가 원하는 만큼 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난 그야말로 내가 받고 싶은 사랑에 예민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순간에도 ‘자기-사랑’으로 가득했다.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담했던 순간조차 사랑이 있었다. 바라는 형식, 원하던 크기가 아니었기에, 생각지 못한 다른 모양이었기에 알아 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모양도 질도 양도 다른 수만 가지 사랑이 있었다. 사람의 수만큼, 유기물의 수만큼 많은 사랑이 있다. 나의 고정된 사랑관으로 제때 제대로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포착되지 못한 풍경이 되어 내곁을 지나가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풍경을 제대로 보자. 오랜 시간 베이고 깎인 골짜기에는 물이 차올라 이제는 호수가 되었다. 호수는 과거의 메마르고 헐벗었던 과거의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제 강물이 되었기에 강물로써 세상과 반응한다. 상처로 패인 골짜기는 이제는 다른 것이 되어 흐른다. 깊은 강물은 너란 하늘, 너란 나무, 너란 구름을 담고 흐른다. 강물은 하늘이 되고 구름이 되고 산이 된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너에게로 흘러간다.  


페르디난드 호들러 <툰 호수의 대칭형 반사> 1905, 캔버스에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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