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제욕이 강하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려고 노력했다. 손에 쥔 것도 잘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악착같음이 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마음을 먹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결심을 끝내고 나면 나는 그것을 하고야 만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회사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자신의 업무 분장이 있다. 서로의 일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상품을 만들고 제작하고 출시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원만하게 돌아가는 경우에는 이런 시스템은 효율적이다. 공정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비교적 발견하기가 쉽지만 서비스 말단에서 문제가 생기면 중간에 어느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기가 어렵다. 나는 그 문제를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사람 중에 하나다. 각 공정에서의 역할을 조사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찾아냈다. 그렇게 회사의 전체 프로세스를 장악해 나갔다.
나는 돈 욕심도 명예욕도 별로 없었다.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내 주변을 확장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변을 확장해서 보니 누군가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틈만 나면 태만하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자기 영역에서 한치의 타협도 원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런 자리들을 꿰찼다. 그것들은 임자가 있지만 없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영토를 넓혀 갔다.
사랑을 할 때도 그랬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것을 모든 소진시키고 싶었다. 사랑을 받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주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너를 정복하고 싶었다. 너가 느끼지 못하게 시나브로 너를 정복해버리고 싶었다. 너의 영토, 너의 하늘뿐 아니라 너의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샅샅이 찾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곳곳에 나의 흔적을 새기고 싶었다.
사랑이 떠나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영토를 뺏기고 나의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내 세계는 어둠이 찾아왔다. 그 어둠 속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구멍이 없는 생명체처럼 꾸물거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기어가다 무언가 단단한 것과 부딪혔다. 그 단단한 것은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쉬고 싶었다. 악착같이 그곳에 머물려고 했다. 그것을 내 옆에 붙들려고 했다. 단단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너무 뜨워진 낮을, 이제는 너무 차가워진 밤을 그것이 막아줄 것만 같았다. 악착같이 붙들었던 그곳에서 나는 지배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악착같이 나를 버리지 못하도록, 나를 붙들도록 조종했다. 모든 것을 고정시켜 논 채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 뼘의 영토와 한 뼘의 하늘의 가지게 되었다. 지배당함으로, 지배당한 만큼 정복하려 들었다.
나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못했고 어떤 것도 정복하지 못했다. 사랑은 확장이다. 사랑은 너로 확장되는 것이고
나는 또 다른 너로, 너로, 너로 확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확장은 두렵다. 내가 너를 놓쳐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너를 붙들 수 없고, 종잡을 수 없으며, 따라가기 어렵다.
불안해 진다.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너를 변하게 해서는 안된다. 자유롭게 해서는 안된다. 나를 떠나게 될 테니까. 나의 필요를 느끼지 않을 테니까. 계속 내가 필요한 사람으로 남게 해야 한다. 이 악착스러움, 징그럽고 징그러운 것. 강한 힘으로 너의 날개를 꺾어 버리고 싶다. 날개를 꺾는 것은 이미 많이 해보았고 당해보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결국 슬픔으로 수렴된다. 꺽여진 너의 날개를 보며 이미 꺽인 나의 날개를 확인할 뿐이다.
현재는 상이며 객관적 실재인 그 상을 표상된 상과 구별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각점들에 의해 다른 상등의 모든 점에 작용하고, 그것이 받아들인 모든 것을 전달하며, 각각의 작용에 대해 동등하고 반대되는 반작용으로 대응하고 마지막으로 광대한 우주로 퍼져나가는 변화들이 모든 방향으로 지나가는 길에 불과하게 되는 필연성이다. - 앙리 베르그손『물질과 기억』
세계는 '상'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표상'이다. 실제 세계는 광대한 우주의 무한한 연결고리 속에서 퍼져나가는 변화이지만 인간의 조건(시각, 경험, 기억)은 세계를 표상하여 본다. 내가 소유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나는 표상을 보고 그것이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상이기에 고정된 상을 가지지 못한다. 세계는 무한한 연결고리 속으로 퍼져나가며 진동한다. 세계의 진실은 종잡을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진동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도래할 이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악착같음이 필요하다. 너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려는 악착같음.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악착같이 행복해질 것이다. 네가 성장한다면 나도 악착같이 성장할 것이다. 네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도 그것을 좋아해 볼 것이고, 네가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면 나도 그것을 알아갈 것이다. 그렇게 너와의 연결고리를 더 많이 만들어볼 것이다. 그렇게 너의 상을, 너의 변화를 느껴볼 것이다.
너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나 역시 변화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표상이 아니다. 세계가 매 순간 변화하는 진동이듯이 나 역시 우주로 퍼져나가는 진동이다. 고정된 나는 변화하는 너를 볼 수 없다. 흔들리는 나만이 흔들리는 너를 알아볼 수 있다. 나는 계속 흔들리며 살아갈 것이다. 세계의 무한한 진동을 느끼기 위해 흔들릴 것이다. 너와 함께 함께 흔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