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비

by 정희주


방에 벌레가 들어왔다.

아이는 무섭다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무서워서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와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벌레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벌레가 사라지고 나자 나는 아이를 탓했다.

혹시 네가 문을 잘못 닫아서 벌레가 들어온 것이 아니냐고.

나는 아이를 원망했고, 아이는 억울함에 슬퍼했다.


방에 벌레가 들어왔다.

아이는 무섭다며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내가 해치울게.

여전히 무서웠지만 아이를 지켜야했다.

눈을 질끈 감은채 손에 든 것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벌레는 무언가에 얻어맞아 기절했다가 금세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흥분했고 아이는 다시 찾아올 공포에 잠겼다.


방에 벌레가 들어왔다.

아이는 무섭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해졌다.

나는 벌레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죽일 기회를 기다렸다.

조용히 다가가 무거운 책으로 눌러버릴 심산이었다.

벌레는 찾으면 도망가고 찾으면 도망갔다.

나는 약이 올랐고 벌레는 살기 위해 분투했다.


방에 벌레가 있다.

갈 곳이 없는지 갈 곳을 잃었는지 기척이 없다.

너 역시 불안하고 무서울 텐데

이 방에서 나가 익숙한 너의 세상으로 가면 좋을 텐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너도 밝은 빛을 찾아왔겠지

너도 따뜻한 온기를 찾아왔겠지


방에 벌레가 있다.

일단 녀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

강한 빛으로 출구를 알려 주거나

쓰레받기에 얹어서 들려 내보내거나

유리병에라도 담아 격리해야 한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다치지 않게, 밖에서도 잘 살 수 있게, 온전한 상태로 내보내야 한다.


아이를 안아 진정시키고 일러주어야지.

나는 벌레를 잡아 밖에 놓아주려고 해.

시행착오를 겪게 될 거야.

다시 놀라게 될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려고 해.

어떤 순간에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아이의 눈 깊곳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나를 믿을 수 있겠니?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보며 묻는다.

자비를 행할 수 있겠니?




keyword
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구독자 126
매거진의 이전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