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갔다. 정상에 올라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었다. 함께 간 남자는 배낭 안에서 족발, 막걸리, 사발면, 보온 물통병까지 꺼냈다. 산에 가서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라며, 나와 함께 먹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걸 다 짊어지고 정상까지 온 거야? 이걸 다 어떻게 먹어? 남자는 먹어보면 안다는 듯 말없이 웃었다. 산에서 먹으니까 정말 맛있었다. 남자도 따라 웃었다.
산에 갔다. 여러 번의 산행 동안 남자는 언제나 짐을 한 보따리를 지고 다녔다. 나는 짐을 줄여보자고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힘든 게 싫었고 남자는 나를 더 기쁘게 하고 싶어 했다. 우린 짐을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산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남자는 산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짐을 지기 싫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각자의 짐만큼 가져가면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자기의 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와 등산을 가기 이전에도 그는 남의 짐을 대신 들어주느라 고된 세월을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원하던 원치 않던 짐을 들어주어야 하는 삶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되어 버린 사람에게 나는 짐을 들어 달라고도 짐을 들지 말라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해도 된다는 말이 그의 눈을 슬프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에 가고 싶어졌다. 혼자라도 가고 싶어 졌다. 여러 번의 망설임 끝에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등산로 입구만 서성거렸다. 초입부터 무서워서 다시 내려오기도 했고 도중에 길을 잃기도 했다. 계획도 없이 정상까지 갔다가 몸살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산행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다시 산에 갔다. 짐은 감당할 만큼만 간소하게 준비했다. 남자는 나와 속도가 맞지 않는다며 혼자 홀연히 사라졌다. 정상에서 만난 그는 인사만 하고는 다시 혼자 하산했다. 성격이 급한 그가 눈길에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산을 내려갔다. 저 아래 먼저 내려온 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했어. 나를 찾다가 네가 미끄러질까 봐" 그는 내가 자기를 찾을 것이란 것도, 내가 빙판길을 겁내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마워" 혼자 걷는 동안에도 나를 생각해 줘서. 더 이상 찾지 않게 해 줘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줘서.
여러 번의 산행에서 '너'는 내 눈에 보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짐을 들어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나와 함께 했고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날 산길에서 놓친 그 마음을 다시 전할 길이 있다면 좋겠다. 나는 그 길을 찾고 있다. 너와 함께 먹을 간식을 짊어질 정도의 체력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