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넌 좀 어려운 여자 같아. 남자에게 묘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켜."
젊은 시절에 간혹 듣던 말이었다. '어려운'이라는 말도 '도전의식'이라는 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말을 한 남자와는 대체로 만남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도전의식'운운하던 남자들은 좋은 학벌에 이름 있는 직장에 다녔고 데이트를 할 때면 차를 가지고 나와서 근사한 곳에 데리고 갔다. 그들의 가슴은 늘 부풀어 있었다. 처음에는 얼핏 자신감 같은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볼 수록 그들의 가슴은 싸움 잘하는 수탉이 가슴을 잔뜩 부풀리며 근육을 과시하는 어느 만화 속의 한 캐릭터와 겹쳐 보였다. 내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스스로 인정하기도 전에 남자의 '도전의식'은 비교적 빨리 수그러 들었다.
내가 정말 어려운 사람일까? 과거의 만남을 되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내게 티셔츠를 선물해 주었다. 남자는 옷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이대 앞에 가서 자기 옷을 한 보따리 정도 사고 나오다가 옷가게 누나가 입고 있는 이 옷을 발견했다고 한다. 너도 예쁘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옷을 건넸다. 선물 포장도 없이 옷이 담긴 비닐봉지를 달랑 건네었다. U자 넥이 깊게 파인 분홍색 티셔츠였다. 나는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분홍색은 내게 욕망의 색이자 금기의 색이었다. 어린 시절에 분홍색 공주 드레스가 유행을 했다. 반짝이는 공단 원단에 화려한 레이스로 만든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너무 입고 싶었지만 엄마는 내가 분홍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내 피부가 너무 까매서 분홍이 어울리지 않는다고했다. 나는 늘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남자가 "네게 어울릴 거야"라며 무심코 한 말에 용기를 내어 분홍 티셔츠를 입었다. 스판기가 있어 몸에 쫙 달라붙었다. 생각보다 편안했다. 목파임이 깊어서 고개를 숙이면 속이 보일랑 말랑한 아슬함이 있었지만 그 또한 재미있었다. 그해 여름에는 분홍색 티셔츠를 늘어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그 뒤로 내 옷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여름에는 쫄쫄이 티셔츠와 나시 원피스와 같은 과감한 옷들에 도전했고 겨울에는 아방가르드한 망토를 두르고 다녔다. 꽃무늬, 기하학무늬 등 각종 패턴에도 도전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화려한 것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쉬운 여자다. 내게 분홍이 잘 어울린다는 말에 나는 분홍이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분홍뿐 아니라 깔별로 화려한 옷도 입을 줄 아는 여자가 되었다.
한 남자가 내게 보수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흥을 좋아하는 내게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그건 네가 깔별로 다양한 나의 흥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보수적인 사람에게서 보이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보수적인 것도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내 옷은 점점 포멀 한 옷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직장에 다녔고 보수적인 결혼 제도에 편입되었다. 질서 정연하고 안정된 세계로 들어갔다.
차곡차곡 단정하게 옷을 채워 입는 기분이 좋았다. 내 삶이 안정되고 정갈해지는 느낌이 났다. 안정된 삶이 이어지다 보니 흔들리는 것이 싫었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내가 지니고 있는 안정적인 것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점점 더 안전하게, 불안하지 않게,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성실함을 덕목으로 내 것을 점점 더 키워나갔다. 사람들은 내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쉬운 여자다. 보수적으로 보인다는 말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안의 보수성을 샅샅이 찾아내었다. 그렇게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한 남자가 내게 감정적인 것 같다고 했다. 감정적이라는 말이 부끄러웠다. 쉽게 흔들리는 불안한 사람 같아 보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감정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감정적인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좀 더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보다는 신체에 집중했다. 몸에서 느껴지는 호흡과 심장박동의 변화를 알아챘고 그 신체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기억을 떠올렸고 그렇게 감정을 발견해 나갔다. 감정적으로 살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감수성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쉬운 여자다. 감정적으로 보인다는 말에 감정이 흔들렸다. 그리고 나의 감정뿐 아니라 너의 감정도 이해해 보려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간혹 어려운(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이제는 의아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 그 말을 인정한다. 대신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게까지' 까다롭지는 않다고 말이다. 알고 보면 누군가의 말을 잘 듣고 그 말대로 하는 쉬운 여자라고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언제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포착해 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가려낸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집단이라 하더라도, 가족이든 뭐든 간에. 나아가 그 사람에게 고유한 무리를 찾아내고 그가 자기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를 찾아낸다는 것. 그것들을 내 것에 결합시키고 내 것들을 속으로 그것들을 관통하게 만들고 또한 그 사람의 것을 관통해 간다는 것. 천상의 혼례, 다양체들의 다양체들, 모든 사랑은 앞으로 형성될 기관 없는 몸체 위에서 탈개인화를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들뢰즈 &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사랑은 빛이다. 태양 빛이 언제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언제나 있다. 언제나 있는 빛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빛을 찾는다. 깊은 어둠의 시간 동안 다시 그 빛이 오기를 기다린다. 사라지면 생각나고 나타나면 반가운 빛이다. 간절히 잡고 싶은 빛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빛이다.
사랑은 목마름이다. 빛을 받고자 하는 나무의 목마름이다. 밤새 낮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해를 만나면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 넓게 넓게 더 넓게 다가가려는 갈망이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조금이라도 넓게 '너'에게 닿으려는 몸부림이다.
사랑은 운동이다. 해가 움직일 때마다, 해의 움직임을 따라, 해와 함께 움직이는 나뭇가지의 운동이다. 해가 동쪽으로 가면 동쪽으로, 해가 서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이동하는 나무의 일상이다. 그렇게 나무는 밤새 낮을 기다리고 낮이 되면 해를 반기며 자라난다. 어느새 어제와 다른 존재가 된다.
"네게 분홍색이 어울려", "너는 보수적이야", "너는 감정적이야" 이 말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나' 였을까? 그들이 내 안에 있는 '나'를 찾아낸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내게 있음을 스스로 찾아내었다면 내게 있었던 것이 되고, 그것이 내게 있음을 스스로 찾지 못했다면 내게 없었던 것이 된다.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있고,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없는 것이 된다. '너'는 '나'를 발견했고 '나'는 '너' 에게 응답했다. 너가 동쪽에서 부른다면나는 동쪽으로 갔고, 너가 서쪽에서 부른다면 나는 다시 서쪽으로 갔다. 그렇게 나는 해를 따라 움직였다. 그 사이 나는 자라났고 매번 다른 존재가 되었다.
다시 낮이 되었다. 예술을 했으면 좋겠다는 너의 말에 나는 예술가가 되어보고, 바다를 닮았다는 너의 말에 나는 바다가 되어본다. 햇살은 언제나 나무를 비추고 있고 나무는 그 빛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기에 계속 움직인다. 햇살은 언제나 있다. 오늘도 이곳에 있다. 나는 움직인다. 햇살이 쏟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나무다. 햇살을 기억하는 나무다. 알고보면 햇살 외에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는 그런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