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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의 집을 찾아서

by 정희주

9살 때 처음으로 이사를 갔다.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윗동네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이전에 살던 아랫동네와는 분위가 좀 달랐다. 아랫동네는 단층짜리 골목집들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여 놓고 살았었다.

친구집에 놀러 갈 때면 벨을 누를 것도 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문 앞에서 'OO야~ 노올자!'라고 외치면 그만이었다. 어른들끼리는 서로의 집에 숟가락 젓가락 숫자도 다 아는듯한 그런 동네였다. 이와는 다르게 새로 이사를 간 윗동네는 이층짜리 양옥집과 다세대 단칸방이 공존하는 조금 독특한 동네였다. 여러 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은 문을 열고 살았지만 큰 집들은 대문을 꼭꼭 닫아놓고 살았다.


동네에 놀만한 곳이라고는 집 앞 천주교 성당 마당과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빈터뿐이었다. 성당에는 예배가 없는 시간에 어린아이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었고, 공사장은 위험하다고 어른들께서 허락을 해주지 않으셨다. 놀 곳이라고는 엄마가 지켜볼 수 있는 거리의 집 앞에서나 가능했다. 하지만 집 앞의 길에서는 승용차와 함께 공사장에서 쓰는 경운기가 성가시게 지나다녔다. 대문을 닫으면 안전하지만 대문 밖은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집 안에는 작은 마당과 반지하의 지하실이 있었다. 지하실에는 구멍이 3개인 연탄보일러가 있어서 언제나 매 쾌한 연기 냄새가 났다. 그곳은 두 살 터울 오빠와 나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지하실의 연탄불 위에다가 직화로 불량식품을 구워 먹기도 하고 녹슨 철망을 구해다가 군밤을 구워 먹으며 놀았다. 끝을 따서 숨구멍을 열어주지 않은 밤은 밤은 열기가 가해지자 껍질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 올랐다. 마치 미사일이 날아가듯 슝슝 팡팡 날아다녔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곳은 숨바꼭질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는 집 마당을 비롯하여 장독대와 지하실까지 있는 구석구석 제법 숨을 곳이 많은 재미있는 집이었다.


지하실은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부모님께서 모두 외출하시고 집 문이 잠겨 있는 날은 지하실로 내려가서 시간을 보냈다. 지하실에는 오빠와 내가 함께 보았던 동화책과 버리지 않고 모아둔 보물섬, 소년중앙, 학생과학 등의 잡지책이 쌓여있었다. 집에는 아이들을 돌봐줄 부모님은 안 계셨지만 우리는 옛날 책들을 보며 두려움을 잊었다.


그 시절 지하실은 알 수 없는 공포와 재미가 있는 느슨한 공간이었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그곳은 엄마 아빠가 없을 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연탄가스와 곰팡내로 가득한 그 공간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곳은 언제나 문이 열려있지만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며 현실도 아니고 환상도 아닌 경계의 공간이었다. 집속에 있는 또 다른 집이었다.


최근에 미술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의 지하실이 생각났다. 미술관도 내게 어린 시절의 지하실과 비슷하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포털 같다. 평소와 다른 호흡으로 숨 쉬고 다른 감정을 가지게 한다. 미술관은 복잡했던 마음이 결을 쳐주기도 했고 풀리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했다. 한편으로는 깊은 심연으로 이끌고 내려가기도 했다. 미술관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겨둔 기억이과 새로운 생각들이 꼬물거리며 일어났다.


책을 읽을 때도 어린 시절의 지하실처럼 다른 세게로 이끌려가는 경험을 한다. 작가가 펼쳐놓은 은밀한 세계로 조금씩 천천히 이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악당도 돼 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캐릭터가 되곤 한다. 지금 철학을 공부하는 공간도 그렇다. 그곳은 철학자가 펼치는 사유 속으로, 평소에 생각지 못한 시공간 속으로, 오랜 시간 기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속으로 진입하는 공간이 된다.


어린 시절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세계 물리적이 공간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가슴을 뭉클하게 움켜쥐게 하는 그림이 있는 곳,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책이 있는 곳, 좋음 음악이 흐르는 곳, 시간을 잊는 대화가 이어지는 곳 등은 모두 그 옛날의 '지하실'이다. '지하실'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가끔은 현실을 잊게 한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꿈꾸게 한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만나게 한다. 그 강렬한 마주침 속에 나는 현실을 잊는다. 기존의 질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새로운 놀이가 시작된다. 익숙했던 자아를 잊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지하실'을 빠져나와 다시 현실을 걷는다. 그러고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예술가의 호흡과 철학자의 정신, '너'의 마음이 내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나를 새로운 길로 가게 한다. 현실 속에 있는 비현실의 공간은 내게 또 다른 현실을 살게 한다. 가장 나다운 삶을 살게 한다.


에이미 베넷 <문제아> 2018, 7 X 11.43cm (c) amybennet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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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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