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분노를 만드는 행위
(타) 1. 찾아온 사람을 따돌리다. 2. 재산을 흐지부지 다 없애다.
자기중심의 관계만 정답지라 외치는 자에게
날아오는 똥침 같은 단어
깝살리다.
원래는 찾아온 사람을 따돌린다는 뜻인데, 이 짓을 반복하면 결국 제 복까지 다 깝살리게 된다는 게 묘하다.
그러니까 1번 짓을 반복하면 2번 뜻의 결론에 이른다는 걸 보여주는 단어랄까.
요즘식으로 말하면
“득 안 되면 손절”,
“느낌 쎄하니 바로 차단”,
“나한테 도움 안 되니 패쓰~”
이런 문화랑 꽤 닮았다.
문제는,
이렇게 다 쳐내다 보면
진짜 내 편, 진짜 내 복까지 같이 잘려나간다는 거다.
요즘은 ‘손절력’이 능력처럼 여겨진다.
상대가 나에게 주는 첫인상, 말투, 사고방식, 분위기가
내 기준과 조금만 어긋나도
“아하, 이 사람 아니다” 하고 바로 숨구멍을 닫아버린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내가 보는 단면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내가 못 본 면에서 진짜 힘이 나온다.
그걸 모르고
내 취향에 안 맞는다고 깝살리면?
그냥 인맥을 줄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받을 수 있는 복의 경로를 없애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뒤통수 맞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가 아니라,
"자기 기준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왜 손해를 보는지, 어디에서 복이 새어나갔는지 평생 이해 못 한다.
때로는
내게 가장 불쾌한 얼굴로 다가온 사람이, 나에게 가장 큰 복을 들고 오는 사람일 때도 있다.
처음엔 뭔가 찝찝하고 무례한 것 같고, 말투가 맘에 안 들고, 스타일이 맞지 않고, 오해가 쌓이는 형태로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는
“누가 복인가?”가 아니라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내게 맞지 않는 사람은 나의 수용폭을 늘려주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물론, 진짜로 피해야 할 사람도 있을 거다.
이 경계선의 선택은 늘 혼란스럽다.
수용폭이 좁으면
복이 와도 “저리 가라” 눌러버린다.
수용폭이 넓으면
불편함 속에서도 다시 보게 된다.
상대를 의심하기보다 나의 불편함이 백프로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한다.
복은 운칠기삼이 아니라,
수용폭 칠, 기준 삼이다.
아니, 수용폭이 다일 수도 있다.
받아낼 만큼만,
내 그릇만큼만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을 깝살리는 건
결국 자기 복을 깝살리는 일이다.
라고~감히 생각한다.
ps. 유튜브 채널의 '이런 사람 손절해라' 제목 보면 신물나는 사람의 푸념글.
내가 손절각이 있는 사람인지 돌아볼 생각은 못하면서 '저 그런 사람 쳐냈어요'하고 자랑하는 댓글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참, 잘나셨어요~
이건 나에게도 던지는 말!
쉽다, 어렵다 한다. 관계여~
내 앞은 깝살리는 사람을 보고 있나요? 내 안의 깝살리는 인자를 돌아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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